교회 관심과 가르침 선행돼야
이번 회를 끝으로 필자가 맡은 칼럼을 마치게 된다. 지난 해 12월 우리나라 생명윤리 논의의 현주소와 한국적 생명윤리의 가능성을 점검하는 내용을 시작으로, 생명윤리 분야에서 논의되는 몇 가지 주요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안락사와 치료중단, 이른바‘수정 후 14일’론에 대한 비판, 인간 생명의 시작(수정)과 끝(뇌사), 장기이식, 임상연구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주제들을 다룰 때 필자는 교과서적인 접근에만 한정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다시 말해, 해당 주제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뒤 이를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실들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고자 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소개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생명윤리에서 중요한 주제이지만 이 칼럼에서 못 다룬 것들도 적지 않다.
유전자 관련(연구, 진단 및 치료), 보조 생식술(체외 수정, 대리모) 등이 대략 여기에 속한다.
환경, 사형제도, 자살의 문제 등 보다 폭넓은 생명의 문제들이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한계라 할 것이다. 필자가 그 문제들을 다루어 주길 기대한 독자가 있었다면 지면을 통해 사과드리며, 후속 칼럼에서 그 아쉬움이 해결되길 바란다.
과거 한국 가톨릭교회의 주요 관심사가 민주화 또는 인권에 있었다면, 이제와 앞으로 교회의 키워드는‘생명’이 될 것이란 게 필자의 예측이다.
만약 필자의 판단이 틀리지 않는다면, 생명 문제와 관련해 올 한 해 교회가 관심 가져야 할 일들을 점검하는 것으로 이 칼럼을 마칠까 한다.
첫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개폐에 관한 것이다.
법률의 전면 개정을 위한 정부안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이런 저런 사정을 고려할 때 금년 내로 개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설령 개정이 된다 해도 교회가 그 법률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회의 입장을 대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위헌 소송)가 2년 전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었다. 그간 별 움직임이 없었지만, 이제 새 헌재 소장이 업무를 시작했으므로 금년 중 무언가 헌재의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둘째, 생명(윤리) 교육에 교회가 체계적인 노력을 펼쳐야 하겠다.
생명 교육에 대한 관심은 그간 상당히 고조되었다. 교회 조직을 통해 성직자와 신자에 대한 교육 계획이 수립되고 확대 시행돼야 겠다.
후속 세대에 대한 생명 교육에도 교회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특히 올해는 2011년 이후 적용될 제8차 교육과정의 교과서 집필이 시작되는 해이다.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새 교과서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올해 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5년 전 대선 후보의 캠프들 중 생명윤리 문제에 관해 가장 준비가 허술했던 곳이 노무현 후보의 캠프였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가톨릭교회는 대선 주자들에게 생명 관련 공약들을 문의하고 그것들의 내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에게 교회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정책을 주문하는 방안도 고려해 봄 직하다.
넷째, 생명 문제에 관해 대한민국 정부 관료들의 태도를 감시, 견제해야 하는 것 또한 교회의 역할이라 믿는다. 지난 30년 간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중앙 정부 관리들이 큰 역할을 해 왔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 안에 뿌리 내린 생명 경시 사상은 우리 사회 발전에 분명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도태되겠지만 우리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성장과 경제 발전 논리에 가로막혀 생명의 문제들이 한번도 쉽게 풀렸던 적이 없었던 우리 사회였기에 하는 말이다.
구영모 교수 (울산대 의대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 위원)
지금까지 집필해 주신 구영모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우재명 신부(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소장)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