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는 살아있다.”
최근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재개를 촉진하려는 정부와 바이오업계의 움직임을 다룬 한 전문지의 기사 제목이다. 이 제목을 조금 감정적으로,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배아줄기세포의 상업적 이익에 대한 기대와 탐욕은 황우석 박사의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수치스러웠던 과학 사기극이 준 교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며칠 뒤 나온 또 다른 보도는 과학기술 관계 장관회의에서 다룬 내용을 전하고 있는데 그 제목이 ‘줄기세포 연구 쉽게 생명윤리법 개정키로’이다. 이를 또 임의대로 해석하면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국가 경쟁력을 키워주는 유력한 산업인데 윤리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니까 피해갈 수 있는 묘수를 고안하자” 정도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뒤에 한 마디 덧붙이면 아주 명확하다. “반드시 하자.”
어쨌든 최근 정부와 생명과학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앞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정책 추진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 지에 대해서 대충 감은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잘 나가던 대한민국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과한 욕심에 무리수를 둔 황박사의 자충수로 인해 소강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 시간도 흐르고 명분도 축적됐으니만큼 재개의 행보를 재촉해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 배아 연구 지지자들의 판단인 것 같다.
어쩌면 한국의 생명운동에 있어서, 특히 배아 문제에 관해서는 생명윤리법의 입법 과정에서나, 혹은 황우석 사태 때보다도 지금이 더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사실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문제가 된 것은 생명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생명윤리의 요소가 개입돼 있었지만 그 핵심은 연구 윤리의 문제였고, 학문적 진정성의 문제였다.
이제부터의 논란은 본격적으로 생명윤리의 문제이다. 일부 생명과학자들과 산업계, 그리고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윤리적 고려에 앞서 높이 평가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가운데 교회는 어쩌면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배아를 보호하기 위한 안간힘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동안 한국 사회 안에서 이어졌던 주요한 사안에 대한 생명운동 진영의 대처가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동기가 뚜렷하고 공감대 형성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배아 연구 지지자들과는 달리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사소하거나 미묘한 입장 차이로 인해 효과적인 대처에 요구되는 연대감 형성과 공동의 보조에 미흡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비중과 중대성에 비추어 배아 연구 문제는 범교회적인 대처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이제는 주교회의 유관 부서의 간헐적인 성명서나 입장 표명만으로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주교단 전체의 명확하고 강경한 입장 표명이 요구되며 교회내 생명과 가정 운동의 주체들이 연대해 일사분란하게 단호하게 결집된 의사 표명이 이어져야 한다.
모든 본당에서 배아에 대한 가르침이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안에 대한 신자들의 입장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교육돼야 한다.
황우석 박사의 배아 연구 좌초는 전적으로 교회의 힘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교회의 힘이 한국 사회의 생명윤리 문제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다.
그 힘은 물리력이 아니고 로비력도 아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며, 결국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힘이다. 세속의 힘을 거스르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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