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에 현존하시는 주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 세상에 막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새 생명이리라. 생명이 피어오르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땅 위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새싹의 움틈, 궁둥이를 좌우로 열심히 흔들어 대며 어미를 따라가는 어린 오리, 갓 태어난 송아지의 어설픈 발놀림, 엄마 품에 안긴 아가의 해맑은 미소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생명의 아름다움은 그것에 대한 존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필자가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가 하루는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아래를 보니 선반 위를 끝없이 줄지어 기어가고 있는 개미들의 행렬이 보였다. 그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행렬을 따라가던 개미 한 마리를 볼펜으로 꾹 찔러 부상을 입혔다.
개미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 것이 분명했지만 그가 그런 장난을 친 것은 부상당한 개미에 대해 다른 동료개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상처 입힌 개미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고, 대열에서 이탈된 채 그 자리에서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발을 동동 구르며 누워버렸다. 하지만 동료개미들은 부상당한 개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총총 걸음으로 자기 길만을 재촉하였다. 이 장면을 본 그는 실망이 컸다.
그러던 중 대열을 따라가던 개미 한 마리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와 부상당한 개미 주위를 뱅뱅 맴도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하다가 개미들의 행진대열로 되돌아갔다. 이 가련한 개미가 동료들에게서 완전히 잊혀졌는가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개미가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부상당한 개미 주위를 다시 뱅뱅 맴돌기 시작하였다. 몇 번인가를 그렇게 맴돌다가 마침내 부상당한 개미를 입으로 물고는 끙끙대며 다른 개미들의 대열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무게에 눌리어 기우뚱거리면서 대열을 따라가고 있었다. 개미의 마음에도 측은지심은 발동하는 것일까.
성서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연상케 하는 이 이야기는 필자를 감동시켰다. 개미에게조차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일깨우는 일화였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귀한 존재이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 모든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창조된 모든 것은 다 귀한 존재이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맨 마지막 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에서는 창조된 모든 것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관상하도록 초대한다.
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햇살을 상상해 보라. 땅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을 상상해 보라. 하늘을 가르는 철새의 무리, 호수 위를 줄지어 가는 백조의 무리, 그들이 물속에서 열심히 내젓는 발길질을 상상해보라. 산고를 겪고 이제 막 엄마 품에 안긴 아가의 해맑은 얼굴을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들인가.
창조된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 무생물은 그 질서 안에, 생물은 그 생명 안에 하느님이 계신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 모든 것 안에 현존 하실 뿐만 아니라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거룩하다는 의미이다. 그 안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필자의 영신수련을 지도하신 신부님의 말씀처럼, 창조된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 앞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붙는 떨기나무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겨 가까이 다가가자, 떨기나무 한 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발을 벗어라”(탈출 3, 5)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 앞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 하느님이 계신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명존엄사상은 앞으로 필자가 연재하게 될 생명칼럼의 중심사상이다. 생명이 무엇인지, 인간 생명이 어떤 의미에서 존엄한지는 다음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우재명 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 원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