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해는 철학, 신학의 영역
소년은 강아지를 좋아했다. 그래서 소년은 부모님을 졸라 귀여운 강아지를 한 마리 가지게 되었다. 강아지가 처음엔 집이 낯설은 탓에 밤새도록 울어댔고, 식구들은 모두 잠을 설쳤다. 그로 인해 강아지를 본래 집으로 되돌려 보내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소년은 끝까지 ‘눈물로’ 우겨서 겨우 강아지를 집에서 키울 수 있었다.
이윽고 강아지가 집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자 아주 힘차게 뛰어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가 집밖에 나갔다가 큰 개에게 물려서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왔다. 그리고 비실거리더니 며칠 만에 죽었다. 소년은 강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뛰놀던 강아지가 뻣뻣하게 굳어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강아지가 정말 죽은 것일까.
옛 이스라엘 사람들도 생명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생명이란 무엇이며, 생명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느 날 사냥을 하다가 그들은 노루가 죽는 순간을 목격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냥꾼의 눈앞에서 잽싸게 이리저리 날뛰던 노루가 그들이 쏜 화살 한방을 맞고는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다가 이내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전 사냥꾼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잽싸게 뛰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생명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들이 살펴보니 뻣뻣이 굳은 노루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땅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그들은 생명의 원천이 피에 있다고 생각했다. 즉, 생명의 원천인 피가 몸 안에 있으면 살고, 피가 몸 밖으로 나와 버리면 죽는다는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누구나 그것을 느끼기는 하지만 정의하기란 쉽지가 않다. 뿌리가 없는 지팡이는 땅에 심어도 자라나지 못하며, 피를 흘린 동물은 이내 몸이 굳어버린 채 죽고만다. 그렇다면 식물의 생명은 뿌리에 있고 동물의 생명은 피에 있는 것일까. 생명에 대한 일관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생물학자들은 생명을 일반적으로 무생물과 구분되는 생물과 그 활동으로 정의한다. 살아있는 생물은 분명히 무생물과 구분되는 그 무엇이 있다.
그렇다면 생물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생물은 외부환경과 구분이 되는 일정한 경계를 가지며, 외부의 자극에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변화에 반응하여 적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외, 생물의 다른 중요한 특성으로 대사 작용이 있다. 태양이나 외부로부터 섭취하는 음식물에 포함된 에너지를 대사과정을 통하여 사용 가능한 형태의 에너지로 바꾼다. 엥겔스는 ‘생명이란 단백질의 존재양식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는 생물현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물질대사이며, 이 물질대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 단백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1940년대 이후 핵산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부터 생물학자들은 물질대사 또는 단백질만으로는 생물을 정의할 수 없으며 DNA가 유전자의 본체로서 작용하는 ‘증식’이 생물의 기본특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명은 다분히 생물학적인 정의 그 이상의 것이다. 생물학은 ‘생명 그 자체’를 정의하기보다는 생명현상 가운데 우리가 경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생물학에서는 모든 생명체는 단백질과 핵산 두 종류의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백질은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맡고 있고, 핵산은 유전자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과학이 아직 파악하지 못하는 생명현상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생명의 본질까지도 파악해야 하며 이는 철학과 신학의 영역이라 본다. 따라서 생명의 신학적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 생명의 가치와 그 존엄성의 근거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신념과 신앙에 근거한다.(창세1, 26 참조)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는 생명존엄의 근거이며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의 핵심이다.
우재명 신부 (서강대 신학대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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