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主義)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잣대이던 시대가 있었다. ‘이념’ 혹은 ‘이데올로기’의 시대에는 대체로 흑백논리가 창궐했고, ‘회색’은 흑과 백의 서로에 대한 단죄보다도 더 강렬한 경멸의 대상이었다.
20세기말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고했고, 21세기는 다양성의 시대이다.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경구조차도 구시대적일 만큼 극도의 다원성을 특징으로 한다. ‘주의’는 이제 더 이상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그런데, ‘주의’가 붙어 시대착오적 구습으로 지탄받는 사고방식을 일컫는 말이 있다. ‘형식주의’와 ‘권위주의’이다. 전통을 통해 형성된 문화적 유산을 가리키는 말에 ‘주의’가 붙어 경직성과 편협성을 지칭하는 용어가 됐다.
우선 ‘형식주의’는 질(質)을 배제하고 방식과 절차에 집중함으로써 본래 취지와 가치를 상실한 상태를 비난하는 용어이다. ‘허례허식’의 일소를 정책으로 내세우며 ‘안주고 안받기’식의, 새마을운동의 한 가지 형태로서 국민운동을 추진했던 것도 그런 시각에서였다.
내실 없는 형식이 무의미하기에 ‘형식주의’에 대한 부정적 판단은 옳다. 그런데 ‘형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나기 쉬운 반-형식주의가 때로는 더 심각한 해악이 될 수도 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신자들은 때로 “주일미사만 간다고 신자냐?”라며 미사가 ‘형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식사 때 성호 긋지 않아도 훌륭한 신자일 수 있다는 것은 오해다. 내실 없는 형식이 공허하듯, 내용을 담는 그릇이 없으면 아예 내용 자체를 잃는다. 수도회는 엄격하게 공동체의 규칙을 지킨다. 괜히 시간을 지켜 기도하고 노동하는 것이 아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자잘한 규칙들은 깊은 영성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여서 건너뛰다 보면 물에 빠진다. 수도자 뿐 아니라 신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권위주의’ 역시 ‘주의’가 붙어 그 본래의 가치가 훼손됐다. 오늘날까지 교회와 사회에서 가장 오용되고 남용된 것의 하나가 ‘권위’이고 그 때문에 ‘권위주의’는 쇄신과 척결의 일차적인 대상이 됐다.
정치적 권위주의는 80년대말 이후 청산됐다. 이후 정치 영역을 넘어 사회 모든 부문에서 권위주의는 정당성과 명분을 잃었고, 현실적으로도 세력을 상실했다. 사람들은 이제 상층부로부터 행사되는 강제적 권위에 대해서, ‘저항’이 아니라 무시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런데 여전히 귄위주의가 명맥을 유지하는 데가 몇 군데 있다. 교회가 대표적이다. 공의회가 하느님 백성의 동등하게 존엄한 소명을 선언했지만 지금까지도 ‘권위주의적 사고’가 살아있다. 교회내 권위주의 청산은 시대적 징표일 뿐 아니라 때늦은 과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이 ‘권위’ 자체의 부정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최고의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권위, 복음의 권위이다. 사도적 계승을 통해 이어지는 교회는 권위가 그 다음이다.
종종 우리는 교회가 권위 있게 선포하는 가르침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품거나 세속의 도전과 위협 앞에서 신앙이 흔들린다. 이는 교회의 권위가 흔들린 탓이며, 하느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교회의 권위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이 ‘권위’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도 ‘권위주의’적인 면모는 교회 안에서 일소돼야 한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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