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형성에 ‘외부환경’ 영향 커
우리가 살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는 ‘누구를 닮았다’는 말이다.
지난 주에 어느 젊은 부부의 혼배를 주례했었는데, 미사를 끝내고 돌아가던 중, 길에서 신랑을 만나서 깜짝 놀랐었다. 조금 전에 헤어졌는데 언제 이 곳에 왔느냐고 했더니 그가 웃으면서 자기는 신랑이 아니라 그의 쌍둥이 동생이라고 했다. 하지만 필자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똑같았다.
그런가하면 필자는 어렸을 때 식구 중 어느 누구도 닮지를 않아서 놀림의 대상이었다. 누나는 늘상 필자에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리곤 하였다. 거울 앞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실제로 식구 중 어느 누구도 닮지 않았었기에 말썽부리면 다리로 다시 돌려보낼까봐 내심 걱정하기도 했다.
자식은 부모의 어느 한 쪽을 닮는다. 아기가 태어나면 조부모, 부모, 친지들이 함께 모여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아기의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흐뭇해하며 ‘혈연의 신비’에 감탄하지만, 닮은 곳이 전혀 없을 때는 불안해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부자(父子)가 서로 닮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유전학의 영역인 듯 싶다. 인간의 체세포 핵 안에는 22쌍+X+Y의 염색체가 있는데, 그 중에 반은 부계에서, 나머지 반은 모계에서 받은 것이며, 이 염색체 안에 있는 유전인자들이 골고루 발현되어 어떤 면은 아빠를, 어떤 면은 엄마를 닮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정체성이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일까? 어느 생명과학자는 자신에게 한 개인의 완전한 DNA 염기서열과 충분한 용량의 컴퓨터만 주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하였다. 즉, 유전자 분석을 통해 그 사람의 해부학, 생리학적 배경 그리고 성격, 행동까지 완전히 기술하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주장이다. ‘인간 천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며, 위계적인 사회의 형성은 인간본성의 발로’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가 개인을 만들고 그러한 개인이 사회를 만든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결정론은 우생학의 유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성유전인자가 우수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우생학적인 유혹이 인공수정, 인간복제 등의 논쟁에 깊이 내재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수한 유전자만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일까?
인간의 특성이 단순히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인간의 염색체 안에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모두 표현 형질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를 핵 안에서 전사할 때 돌연변이가 일어나기도 하며, m-RNA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형성(polymorphism)에 의해 전사되지 않는 유전자도 발생한다.
더욱이 인간의 특성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어느 가정에서 일란성쌍둥이가 출산하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여 쌍둥이 형은 시골에서 할머니가 키우고 동생은 스웨덴의 한 가정으로 입양을 보냈다. 이들은 잘 성장하였고 스웨덴 양부모의 배려로 26년 후에 서로 다시 만났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일란성쌍둥이인 이들이 서로 만났을 때 서로의 성향뿐만 아니라 체격도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 성장한 형은 내성적이었고 모든 면에 소극적인 반면 스웨덴에서 성장한 동생은 외향적이고 적극적이었으며 키도 형보다 훨씬 컸다.
유전자가 한 인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전자만이 한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환경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부모의 양육과 교육은 한 인간을 형성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우재명 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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