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건축 이념과 가치, 진정성 고려하자
최근 한국 성당건축의 외관 형태 이미지에 관한 연구논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반 신자들이 가장 성당다운 성당으로 생각한 건물은 하나같이 전례정신과 무관하게 지어진 절충형태의 진부하고 인습적인 건물들이었고, 오히려 전례의 풍요로움을 반영한 인상적인 내부공간의 것은 성당답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진에 의한 설문조사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전국적으로 계속 지어지는 무국적의 중세풍 성당을 볼 때 우리들의 건축문화에 대한 인식수준에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초자연적인 영적 세계와 그곳에서의 존재(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러한 존재의 힘을 빌어 이상적인 새로운 삶에 대한 소원을 달성하기 위한 실천으로서의 의식의례행위(전례)이다. 그리고 종교적 믿음과 실천은 상징을 통해 이해되고 표현되며, 전례를 통해 초월적인 존재-신과 만나기 위해 성소공간이라는 특수한 종교건축공간이 요구된다. 따라서 종교건축의 본질은 무엇보다 ‘전례라는 기능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릇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 외적인 덩어리(mass)나 형태보다 속의 비어있음이 중요하듯이 건축의 본질도 형태나 크기에 앞서 공간, 바로 비어있는 내부공간에 있다. 그릇을 이루고 있는 재료나 형태, 색깔, 크기는 모두 그 속에 담는 대상의 양과 성격에 좌우되며, 외적형태의 아름다움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따라서 좋은 건축의 관건은 내부공간에 달려있다.
종교건축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전례의 기능에 합당한 내부공간을 이루어야 하며, 둘째, 전례는 상징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기능공간이 아니라 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상징공간이어야 하며, 셋째,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과 결과로서 합리적인 구조와 아름다운 외적형태가 그 다음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 종교건축은 내부는 강당형태이고 외관은 인습적인 형태-중세풍의 교회와 한옥절충의 법당-가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 신자들은 명동성당과 같은 고딕양식이 가장 가톨릭적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원한다. 고딕양식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가장 적합한 성당건축양식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고딕건축이 갖는 종교건축으로서의 ‘도덕성’과 ‘진정성’의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고딕양식을 오해하고 있다. 고딕양식의 정수는 높이 치솟은 뾰죽탑이나 뾰죽아치의 외관형태, 화려한 조각장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전례의 상징적 의미와 기능, 구조, 형태가 일치된 ‘진정성’에 있다. 즉 공간, 구조, 빛 등 다양한 여러 요소들이 모여(위계적인 분절) 하나의 정신으로 유기적 통일체를 이루는 내부공간형태가 중세의 봉헌위주의 전례와 ‘하느님 집’의 구현에 가장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딕양식과도 봉헌과 나눔의 현대 가톨릭 전례개념과도 무관한 강당형태의 단일 내부공간에 고딕양식의 외피를 본 딴 장식요소들로 치장한 절충식 건축을 고딕양식으로 오해함으로써 진정성이 결여된 시대착오적인 성당건물을 양산하고 있다. 종교건축은 신앙의 원천인 전례의 본질에서 나온 전례형태, 그리고 그것을 합당하게 담을 수 있는 내부공간형태가 우선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구조와 결과로서의 외관형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치기준을 ‘크기와 편리의 기능성’에 두고 ‘장식적이고 과시적인 외관형태’를 먼저 생각하며, ‘성물과 장식으로 거룩함을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내부공간형태의 역동성과 상징성이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건축의 이념이 쇠퇴하고, 상징보다는 기호(사인), 장식과 감각적인 표현에 집중하는 현대건축의 한 흐름도 있지만, 언제나 종교건축의 본질과 가치는 거룩함의 표현인 건축적 성(聖), 구조 및 시공의 성실성과 재료의 진실한 표현인 건축적 진(眞), 기능과 효용성의 건축적 선(善), 그리고 정서적 아름다음의 건축적 미(美)에 있다.
왜 우리는 유아세례가 대부분인 유럽의 성당에도 필수적인 세례대가 사라지는지, 성소에 들어가는 준비와 과정공간으로서의 배랑(narthex)이 극장 로비처럼 되는지, 신자들은 사제(주연)와 성가대(조연)의 전례(공연)를 구경하는 관객이 되기를 스스로 원하는지, 가난의 정신, 환경보호와 생명운동 운운하면서 주변을 압도하는 성전을 지어야하는지, 건축과정에 모두가 ‘진정성’을 갖고 참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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