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해장국 먹으러 식당에 들렀는데, 좀 황당했다. 부부가 함께 하는 식당인데, 밤새 싸웠는지 얼굴은 퉁퉁 붓고 밥그릇 국그릇이 연착륙을 못한다. 새벽부터 눈칫밥에 배가 부르다. 손님은 나요, 내 돈 주고 밥 먹는데 왜 제 맘에 따라 장사하는지. ‘사용자 혹은 수용자 중심’이 아니다.
아주 가끔, 백화점에 들러 큰 맘 먹고 옷 한 벌 사러 가지만 ‘서 있는’ 옷은 비싸서 세일 코너에서 ‘누워 있는’ 옷들만 뒤적거린다.
수북한 옷들 사이를 다니다보면 종업원들의 수완이 매상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짐작케 된다. 어떤 종업원은 ‘고객님!’을 남발하면서, 스토커처럼 뒤를 바짝 붙어 시선이 가는 옷마다 침을 튀긴다. 맘 놓고 뭘 볼 수가 없다. 반면 어떤 이는 옷을 들고 쫓아가야 한 마디 대꾸한다. 누운 옷들은 사이즈가 없는 게 많아서 적당한 사이즈가 있는지 물으면 “그게 다예요” 하며 알아서 찾아내란다.
제일 맘에 드는 종업원은 ‘무관심의 지극한 관심’형이다. 편안하게 내버려 두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어김없이 미소를 짓고 친절한 설명을 준다.
싸고 좋은 걸 찾는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지만 외면하지 않는 종업원. 그는 자기 제품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가치 없는 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좋은 걸 골라주는 안목과 센스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일찍이 하느님도 이런 수완을 보이셨다. 하고 많은 것들 중 우리가 좋아할만한 최고 품질의 것들만 주신다.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도 함께 주셨다. 하느님은 항상 수용자 중심이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역시 사용자 중심-신앙인이 사용자냐 하는 논의는 여기서 불필요하다-이라는,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룬 사건이다. 현대의 조류에 다가서려는 열린 자세가 그러했고, 모든 신자들이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 개혁의 조치도 그러했다.
사용자 중심은 시대의 징표이다. 우리는 그 실례를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환경과 사고방식들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향후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흐름은 웹 2.0이라는 개념이 좌우한다. 웹 2.0은 사용자 참여 중심의 인터넷 환경을 뜻한다. 전세계의 네트워크화에 기여한 것이 웹 1.0이라면, 네트워크상에서 누구나 손쉽게 컨텐츠를 생산, 공유하도록 업그레이드된 것이 바로 웹 2.0이라는 인터넷 환경이다. 그 개념이 구체화된 것이 UCC(User Created Conten ts)이다.
벤처의 거품이 걷히고 여전히 살아남은 성공한 웹 기업들의 특징은 참여, 공유, 개방이었다. 웹 2.0의 개념은 이 세 가지로 압축된다. 이것이야말로 사용자 중심의 패러다임이다.
한국교회도 이러한 시대적 추세를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지역사회에 열린 교회, 기다리는 교회에서 찾아가는 교회, 속지주의의 단단한 틀 안에 갇혀 있지 않으려는 몇 가지 시도들에서 나타난다.
수용자 중심의 하느님의 자세와 공의회 정신을 한국교회는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이미 교회는 싸고 좋은 제품들을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공짜로 받는 복음에 은총이라는 사은품까지 끼워준다. 남은 것은 사용자 중심의 사고와 행동이다.
박영호 취재팀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