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 도덕적 책임 피할 수 없어
지난 학기 수업시간에 ‘A.I.’라는 영화를 보았다. A.I.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ect)’의 약자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의욕과 그러한 연구의욕이 지나쳤을 때, 과학이 인류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해악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영화에서, 로봇제조회사의 한 과학자는 ‘진화신경망’이라는 것을 로봇에게 부착하여 인간이 가지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로봇이 소유하게 하는데 성공했음을 발표한다. 그때 한 참석자가 질문한다. “우리가 사랑의 감정을 가지는 로봇을 만들었다고 하자. 하지만 우리가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즉, 우리가 그들을 책임질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이것은 144분간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이 영화의 화두였다. 우리가 사랑의 감정을 가지는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하자. 그 다음은?
데이빗은 귀여운 소년로봇이다. 마틴이라는 소년이 식물인간상태로 회복불가능한 상태가 되자 데이빗은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한 가정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자리는 본래 자신의 자리가 아니었기에 그 집 부인과 한 동안 갈등상황을 일으킨다, 하지만 결국 부인의 동의로 데이빗은 ‘엄마’를 가지게 된다. 소년로봇과 아줌마로서의 아득히 먼 관계에서 아들과 엄마의 다정다감한 사랑의 관계가 된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뿐, 영원히 잠들 줄 알았던 아들 마틴이 긴 잠에서 깨어나면서 데이빗은 거리로 내 몰린다. 데이빗은 이제 보호자 없는 로봇이요 로봇사냥꾼의 사냥대상이며 갈 곳 없는 떠돌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게 쫓기면서도, 그의 마음 속 깊이 맺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데이빗은,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것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존재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다.
2000년 후에 만난 외계인의 뛰어난 과학도 그의 애처로운 처지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데이빗은 엄마의 머리카락으로 복제된 엄마와 함께 지낸 단 하루로 만족한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비록 기계에 불과 한 그였으나 사랑의 감정을 가슴에 묻고….
과학이 급속히 발전하는 요즘,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논쟁은 찬반론이 팽배하다. 과학의 가치중립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과학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이며, 과학자는 자신이 행하는 연구 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없다. 단지 그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살상무기를 만든 사람은 자신이 만든 살상무기에 대하여 윤리적 책임이 없으며, 책임은 그 무기를 사용한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다. 과학자 자신이 만든 핵무기로 많은 사람이 살상될 것을 예견하면서도 그러한 무기를 만들었다면 과연 그가 윤리적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결국 과학이 가치중립이라는 주장은 과학기술의 윤리성에 대한 논의에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과학 연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과학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과학자가 연구결과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과학과 사회는 서로 상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컴퓨터산업, 의료산업 등과 같이 인류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무기산업, 인간복제, 우생학적 유전자 조작 등과 같이 자칫 그것이 잘못 사용되는 경우 인류에 크게 해를 입히는 것도 있다.
교회는 ‘인간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1987)에서 과학연구나 그 응용이 그 자체로 가치중립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또한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에 의한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참되고 온전한 선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2항)
우재명 신부 (서강대 신학대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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