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가치만큼 철저히 지켜지길
언젠가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조카에게 ‘너 여자친구 있니?’하고 물으니 ‘그건 내 프라이버시야’하고 답한 적이 있다. 조카는 ‘그건 내 비밀이야’라는 의미로 말한 것 같다.
프라이버시란 무엇인가? 프라이버시 권리를 법적으로 체계화한 하버드법대의 사무엘 워렌교수와 루이스 브랜데이스 교수는 프라이버시를 ‘홀로 남을 권리’(being left alone)로 정의한다. 즉, 개인은 자신의 영역을 남으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파파라치에게 추적을 받던 중 자동차사고로 사망한 다이아나 황태자비의 경우를 보더라도 개인의 행복권을 추구하는데 프라이버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 할 수 있다.
당시 다이아나 황태자비는 영국사회의 관심을 받던 공인이었기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사진을 찍어 상품화하는 파파라치들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자친구 도디와 파리에서 여행을 하던 중 오토바이를 타고 추적하는 파파라치들을 따돌리려고 무리하게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프라이버시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개인의 영역이 보호되지 않고서는 개인의 행복을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 권리는 개인의 영역에 대한 불침해권 뿐만 아니라 제삼자가 알게 되는 경우 당사자에게 직접적인 해를 줄 수 있는 개인의 건강정보, 범죄기록, 재산정보 등에 대한 자율권을 포함한다.
하지만 프라이버시 권리는 절대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고 타인의 선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에 사회의 공동선과 대치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전자에도 프라이버시권리가 존재하는가? 1982년 유럽국회에서는 처음으로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권리로 인정하였다. 또한 1997년 유네스코의 ‘인간게놈과 인권에 관한 선언’에서도 인간유전자의 유일성과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유전자 프라이버시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 게놈프로젝트의 완성과 더불어 유전자진단은 사회 안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전자진단은 치료를 위한 자료 제공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반면 유전자프라이버시침해라는 부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유전자진단에서 얻은 정보가 연구자, 고용인, 보험인들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신입사원들에게 유전자진단서를 요구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입사취소 등의 불이익을 준다든지 혹은 보험회사직원이 피보험인의 유전자결함여부를 입수하여 생명보험계약을 임의로 취소하거나 계약료를 건강한 피보험인보다 훨씬 많이 요구하는 경우이다.
유전자 진단의 결과는 일반 건강검진과 다르게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의 유전자프라이버시와 관련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유방암유전자(BRCA)진단에서 양성을 받은 경우 이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딸과도 관계된 프라이버시문제이다. 왜냐하면 유방암유전자의 경우 모계를 통하여 유전적 결함이 유전될 확률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그녀의 딸도 유방암을 앓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유전자정보를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당사자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일 뿐만 아니라 그의 혈연가족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이기도 하다.
더욱이 유전자진단은 일반건강검진과 다르게 유전자진단에서 양성을 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에 유전병으로 발병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유전자진단을 근거로 당사자를 마치 환자처럼 취급한다면 이는 인권침해이다.
유전자진단이 순수하게 치료목적으로만 사용된다면 정당하지만 유전자정보가 제삼자에 의해 남용된다면 이는 인간존엄성 침해로써 부당하다.
우재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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