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묵상-지역 교회 교류-복음화에 도움 될 것
독일의 고속도로 교회
남부독일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바덴바덴 부근 휴게소 근처 황량한 벌판에 우뚝 선 피라밋 형태의 건물이 오가는 여행자와 운전자의 눈길을 끈다. 여행자의 수호신 성 크리스토퍼에 봉헌된 고속도로 성당이다.
“잠깐 멈추고 쉬어 가거라! 여기서 너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라! 너의 생활과 일에 대한 의미를, 너의 슬픔에 대한 위안을, 그리고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평화를, 새로운 출발을 위한 힘을 찾아라!”
이전에는 교회가 도시나 마을의 심장이요 중심을 이루었으며 지나가는 여행자들은 반드시 그 교회를 방문하였다. 중세시대에는 나그네와, 순례자 그리고 여행자에게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경당과 십자가를 갖춘 공간이 길가에 제공되었다. 이것은 한편으로 기도의 장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하느님을 다시금 상기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위대한 고속도로는 도시를 빠르게 연결하고 교회는 주요한 교통의 흐름에서 멀리 벗어나 있게 되었다. 길가 경당과 십자가가 현대사회 생활공간에 맞게 변형된 것이 바로 독일의 고속도로 교회이다.
독일의 1만20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에는 28개의 고속도로 교회가 있다.
이중에는 가톨릭성당도 있고, 루터파 교회, 개신교 교회도 있는데 불과 20~50 좌석의 작은 경당이지만 더러는 본당인 경우도 있으며, 주말에는 시간차를 두고 다른 종파의 전례도 같은 장소에서 거행되기도 한다. 이들 교회는 여전히 전통적인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심신이 지친 사람들을 안으로 초대한다. 따라서 고속도로 교회는 현대사회의 빠른 생활패턴과 대립되는 공간일 수 있으며, 인간이 신과의 만남을 추구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자청하는 곳이다. 1958년 이후 해마다 증가하는 독일의 고속도로 교회는 사고율 감소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고속도로에 성당이 있다면
우리의 고속도로 수준도 독일에 못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선진화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지만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전국의 고속도로망과 휴게소 시설 특히 화장실의 개선을 들 수 있다. 1968년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된 이래 전국의 고속도로는 현재 24개 노선에 총연장 3100㎞에 달하며 고속도로변 휴게소는 141개가 있다. 우리는 전국 어디서나 30분 이내에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반나절 문화권의 고속도로시대에 살고 있다. 지능형 교통 체계(ITS)의 구축과 휴게소 시설의 고급화, 여가시간의 증가로 이제는 고속도로와 휴게소가 빠른 이동과 단순한 휴게가 아니라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일상 생활문화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늘어나는 교통량과 대형사고의 위험에 운전자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며 주행하고 있다. 매우 높은 자동차의 소음, 시각적으로 보이는 자동차의 홍수와 작은 움직임의 자유를 억압하는 끊임없는 집중화와 정체화는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의 근본적인 요소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차도 주변의 휴식 공간이 물리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휴식 공간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휴식의 공간까지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잘 정비되었다는 휴게소도 조용한 휴식의 시간을 갖기엔 매후 미흡하다. 전쟁치르듯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숨가쁘게 떠나는 여행습관, 음악이 아니라 소음으로 들리는 소란스러움과 무질서한 상업공간에서 잠깐 물러나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공간이 배려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점에서 독일의 고속도로 교회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고속도로 교회는 여행자와 운전자에게 교통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운전의 스트레스에서 묵상과 심신회복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말의 정체 속에서 자칫 거르기 쉬운 주일의무를 할 수 있게도 한다. 또한 본당의 한계를 넘어 다른 지역 신자들과의 만남도 이루어지고, 일반인에게 교회를 안내하는 접촉처가 될 것이며, 시간차를 두고 다른 종파의 전례도 수용함으로써 교회일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 문화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 고속도로 교회를 현대 한국교회의 한 유형으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태어나 살면서 항상 ‘가는 길’위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특히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에게 고속도로 성당은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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