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철학적, 종교적 성찰의 근본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인간은 나고 자라면서 그 성품이 형성될 뿐이라는 주장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에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발생한 참극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여기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자신을 포함해 무려 33명이나 되는 소중한 생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이 사건은 과연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가능한가를 우선 묻게 한다.
그 동기가 아무리 이해할만한 것이었다고 해도, 범인이 아무리 정신적으로 병적인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동료인 인간을 그처럼 처참하게 살해했다는 것을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그 뿌리에서부터 잘라내는 사건이었다. 신뢰를 논하자면, 그를 그렇게 몰아간 상황 자체와 그러한 상황을 제공한 사회측으로부터도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존재까지도 부정할 정도로까지, 범인이 사로잡혀 있던 그 감당할 수 없는 상심과 좌절, 절망과 증오는 그가 속해있던 사회에게로도 일단의 책임이 돌아간다.
“나는 이처럼 처참한 처지에 있다”는 무언의 항변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사회는 어쩌면 범인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었는지 모른다. 물론 그것이 범인의 행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우리는 이 사건에서 죽인 사람이나 죽어간 사람들 모두가 피해자임을 이제는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던 우리들의 실존의 처지를 이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 깨달음의 시작을, 참극의 현장에 마련된 추모석들, 그 위에 놓여진 꽃과 편지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그 어떤 위대한 인물의 추모사보다도 웅장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목소리였다.
그를 탓하기 전에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은 우리가 먼저 뉘우쳐야 한다는 이 학교 학생들. 앞으로 학교에서 말없는 외톨이를 만나면 입을 열 때까지 말을 걸어 친구로 만들겠다는 학생들.
참배객들은 32개의 추모석을 지나, 범인 앞에 머물며 다른 피해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고개를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장엄한 광경이었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 줄기 눈물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용서와 치유는 이미 시작됐고, 증오의 악순환의 고리는 범인의 추모석 위에 놓인 꽃과 편지로 단호히 끊어졌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제사가 하느님을 배신한 인간에 대한 용서와 치유를 완성하고, 죄와 죽음의 고리를 끊어버렸듯이, 이들은 범인을 향한 따뜻한 눈길, 그리고 그가 처했던 절망의 상황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회복시켜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선진사회의 성숙한 시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느님 모상을 따라 창조됐기에 이미 사랑을 알고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고인들을 추모하며, 다시 찾은 신뢰에 가슴이 벅차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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