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방지’ 교회가 앞장서야
고2때 수학여행 중,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친구의 자살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 했던 때가 있었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필자는 고2때 남쪽으로 멀리 수학여행을 갔다. 대전, 경주, 부산을 다녀오는 3박4일의 여정이었다.
요즘이야 워낙 빠른 기차 덕택에 부산을 쉽게 다녀올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단히 먼 여행길이었다. 더욱이 필자에게는 경주, 부산이 모두 초행길이었기에 마냥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여행 중, 부산 통도사에 있는 기념품가게에서 친구가 도둑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우리 여행은 엉망이 되었다.
가게주인들이 여기저기에서 몰려나와 자신의 가게에서도 도난이 있었다면서 모두 변상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념품가게 주인들이 요구하는 데로 모두 변상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던 우리들의 마음은 허탈했다.
부산 해운대에 도착해서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엄하게 단속하기 시작했고, 수학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던 우리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우리가 그러했으니 도둑으로 몰렸던 친구의 마음은 어떠하였겠는가? 친구는 외출금지령이 내렸던 그날 밤, 숙소 근처의 야산에 올라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자살하였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자신을 도둑으로 몰았던 기념품가게주인들을 원망하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친구의 자살소식을 접한 이후로 필자의 마음은 아주 오랫동안 텅 비어 있었다.
그 친구는 필자의 중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가벼운 장난조차 칠 여유도 없이 오직 공부에만 열중했고 그래서 늘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우등생이었다.
더욱이 그는 한번도 친구들과 다투는 적이 없었던 학급의 모범생이었다. 그런 친구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였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어머니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매일 등교하여 자식이 앉아 공부하던 그 자리에 앉아 계셨다.
결국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교실 밖으로 밀려 나셨지만 그래도 한동안 오셔서 운동장 가에 앉아서 울고 계셨다.
통계청보고에 의하면, 2005년 우리 나라의 자살율은 인구 10만 명당 26명으로 하루 34명 정도가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너무 쉽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안락사, 자살, 인터넷을 통한 동반자살 등을 보면 고통에 대한 문제해결을 단순하게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자살은 자신에게나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나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선(善)이 되지 못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몇몇 연예인들의 자살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했다.
그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그들의 남겨진 부모, 가족, 친구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과연 죽음의 선택이 최선의 방법이었는가?
자살은 어느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자살은 ‘살인하지 말라‘는 제5계명을 어기는 행위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귀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 행위로써 생명에 대한 신성불가침권을 어기는 것이며, 사회적인 대인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공동책임과 영향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이다.
죽음을 결심하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이 가족과 사회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게 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끝내는 것이 그가 원하는 자아실현의 길인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살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육체적인 생명 후에도 계속 남는 영혼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살은 단순히 개인의 죽음이기보다는 사회의 죽음이다. 개인이 스스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의 문제는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자살은 순간적인 행위라기보다는 개인이 겪는 ‘무능체험’으로부터 ‘자아협소증’으로 발전하여 결국에는 자신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과정이다.
자살이 이렇듯이 무능체험에서 자아협소증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상담을 통해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어느 대학신문사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대학생 응답자의 43%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했고, 그 중 14%는 자살을 시도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하였다.
특히 자살 충동을 느낀 응답자 중 75%는 갈등문제에 대해 상담할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고 답하였다.
자살방지를 위한 상담소 설치는 생명운동차원에서 교회가 앞장서야 할 것 같다. 이를 위해 가톨릭교회 내에서 자살방지상담을 위한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우재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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