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와 호스피스
호스피스로 죽음의 고통 이기자
필자는 전에 영국 BBC가 제작한 안락사에 관한 비디오를 시청한 적이 있다. HIV에 감염된 한 네델란드 청년이 자신의 주치의에게 안락사를 요청하였다.
주치의는 그를 설득을 하였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마음을 바꾼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고,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만난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하여 진료비도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대답하였다. “천만에요. 이것은 내가 결정할 사항입니다.”(Absolutely not. It’s up to me!) 그리고 ‘주치의는 그가 정한 날에 그를 방문하여 안락사를 시행하였다’라는 자막이 쓸쓸히 흘러나왔다.
필자는 이 비디오를 보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자신의 죽을 날짜를 스스로 결정하는 환자나 그러한 행위에 동의하여 그의 자살을 도와주는 의사에게 과연 생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싶다. 고통이 수반되는 생명은 이미 가치를 상실했다고 보는 것인가?
안락사를 의미하는 단어인 Euthanasia는 좋은(well)을 의미하는 희랍어 ‘eu’와 죽음을 의미하는 ‘thanatos’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희랍인들에게 안락사란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지를 경험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 없이 편안히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이상적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안락사의 의미가 현대에서는 질병의 고통이나 단말마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의학적 개입’으로 변질되었다.
안락사 논쟁에는 복잡한 주장들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고통의 문제이다. 치료의 가능성도 없으면서 질병에 따른 극심한 고통만이 있는 경우 환자의 자발적 요구가 있다면 그의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은 과연 인간에게 무의미한 것인가? 치료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환자 당사자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의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 필자의 생명윤리강의시간에 가톨릭의과대학 이경식교수님을 초대하여 호스피스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호스피스야말로 안락사에 대한 대안이 아닐까 싶었다. 인간이 마지막 가는 길은 고통의 덩어리이다.
특히 암환자들은 오심, 두통, 수면장애, 호흡곤란, 변비, 배뇨곤란 등의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 중에서도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은 통증이다. 하지만 호스피스병동에서는 진통제의 사용으로 90%이상 통증조절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울러 병원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반병동에서 자신의 상태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68%인 것에 비해, 호스피스병동의 환자들은 19%만이 분노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반병동에서는 31%만이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인다고 답한 반면, 호스피스병동에서는 61%가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이것은 실로 믿기 힘든 결과이지만, 필자는 호스피스병동의 환우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는 순간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얼굴은 마음의 표현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만 보아도 그가 행복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우들의 얼굴에서 전혀 긴장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마치 지금이라도 당장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듯 한 편안함과 행복감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모습에 필자는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이미 고통과 두려움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스피스병동에서는 두 가지를 약속한다. 당신을 결코 혼자 두지 않겠다는 것과 육체적 고통을 책임지고 줄여 주겠다는 것이다.
죽음의 과정 안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외로움과 고통이다. 이러한 고통을 피하겠다는 것이 안락사의 주장이라면 호스피스야말로 안락사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재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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