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상일수록 ‘사랑의 느낌’을 전하자
한강고수부지에 유채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업무시간 중 짬을 내어 가보았다. 선명한 노랑물결이 파란 한강물 위로 물결쳐 흐르는 듯 가슴 가득히 안기었다. 몇몇 젊은 부부들이 유모차를 끌고 꽃밭 사이사이를 산책하며 살랑살랑 강 바람에 실려오는 유채꽃 향을 맡고 있었다. 유채 밭 옆 수로를 보니 수십 마리의 거위 떼가 한가로이 이리저리 헤엄치다가 먹이를 손에 든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사람을 경계하는지 몸을 모두 물 속에 담그고 던져주는 먹이를 서로 먹겠다고 하였다. 먹이를 거의 다 주고 내가 일어서려 할 때쯤 중간 서열쯤 되는 거위 한 마리가 갑자기 물에서 내 발 밑 바위에 뛰어 올라 떡 버티며 당당히 나를 쳐다보고 서는 것이었다.
그 뜻을 알아차리고 내가 손바닥에 먹이를 놓고 손을 내밀자 그 노란 주둥이로 먹이를 주워 먹는데 내 손바닥에 딱딱한 주둥이 턱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거위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친 순간, 비록 거위지만 매우 친근한 애정과 나에 대한 신뢰감을 보내는 것 같았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그리고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 거위의 움직임, 나를 쳐다보던 해맑은 작은 두 눈이 자꾸 떠올랐다. 시간여유가 없어 아직 다시 가지는 못했지만 그 거위와 ‘느낌’이 통했던 여운이 길게 남는다. 그 거위가 리듬감 있게 물갈퀴를 저어 멀리 사라져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관심도 간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의 눈을 들여다볼 때도 이따금 우리의 언어로는 통하지 않지만 느낌으로 통하는 어떤 교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디 동물뿐인가? 식물도 그렇다. 요즘 아파트 단지 꽃밭에는 목단화가 한껏 화려한 자태와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사람의 눈길과 관심을 기대하며 지난 1년간 준비했을 정성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다. 봄에 피는 모든 꽃, 심지어 들길에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이름 없는 야생화도 관심을 갖는 이에게는 반드시 느낌으로 보답하며 존재의 소중함과 행복감을 그 보답으로 전해 준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자포자기적이고 엽기적인 대량 살인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온통 들끓게 했고, 국내에서는 어느 재벌회장이 미국 명문대에 다니는 아들의 보복폭행에 가담한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을 몹시 안타깝게 했다. 이 두 사건은 제각기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끔찍함의 정도도 크게 달라서 두 사건을 함부로 비교해서는 안 될 줄 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게 있다.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의 소통 없이 행해지는 일방적인 자기과시와 그것이 가져온 가공할 만큼 불행한 사태이다.
‘지식인’이나 ‘돈과 힘이 있는 사람’일수록 내면적인 느낌 소통을 소홀히 하고 오직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데 골몰하다가 자신과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경쟁적이고 시험성적 위주의 교육열풍을 걱정하고, 지식인과 기업인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세상을 사랑하는 열정이 식고, 오직 이기적이고 메마르고 공허한 블랙홀이 형성될 때 올 수 있는 불행한 사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지식과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고차원적인 철학과 명분으로 홍보하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지식과 경제력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때에 보이는 ‘사회 부적응현상’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생명 있는 것끼리 서로 느낌을 나누고 서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사랑’관계를 더 열망하고 거기에서 만족감을 얻고 평화를 얻는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사나워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강하게 느낌을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그게 사람의 속성이다.
우리의 신앙은 사람의 충만한 내면, 일상의 느낌에서 하느님의 존재와 함께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에겐 한강 수로에서 만난 거위나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같은 동물과도 느낌을 통할 수 있는 섬세함이 있고, 봄에 피어난 풍성한 꽃과 보드라운 나뭇잎과 대화할 수 있는 영감이 있다.
이 봄도 깊어간다. 봄이 다 가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자연을 찾아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들과 들녘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보드라운 녹색 나뭇가지의 평화로움을 호흡하고 느끼고 대화하고 싶다. 봄 들녘에 나가면, 지식-돈-힘을 좇아 정신없이 내달아 온 ‘소외되고’ 공허하고 사나운 내 마음이 봄바람처럼 싱그럽게 충만함을 회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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