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냉장고 업체의 저 유명한 CF 카피. “여자라서 행복해요….”
우리 사회에서 여자인 것이 행복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 연초 한 온라인 취업사이트에서 여성 직장인 6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를 보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충을 경험한 적이 있는 여성 직장인이 무려 73.1%나 됐다.
물론 남자라고 해서 직장 생활이 수월하겠는가마는 성(性)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여성의 전유물이다. 우선 여성 직장인이 겪는 차별은 일에 대한 보수로 주어지는 임금에서부터 나타난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2%가 임금 차별을 가장 큰 고충으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 업무, 승진, 능력(성과)에 대한 차별이 이어졌고, 고용 자체가 불안하거나 성희롱, 그리고 출산 및 육아 휴가 사용의 어려움과 임신, 출산을 이유로 한 퇴사 조치도 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변화에 따라 고위 지도층에도 여성 파워가 커지고 있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성공기가 대다수의 여성 직장인들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그래서 이 CF 카피가 조금 의심스럽다. 고작 냉장고 한 대 들여 놓은게 그렇게 여자를 행복하게 할까? 이 카피는 그 후로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마다 숱하게 쓰여 진다.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각종 금융 상품, 먹거리, 숙박업소, 외식업체 등 과거에 비해 구매력이 월등하게 향상한 여성 소비자의 발걸음이 가는 곳마다 지갑만 열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는다.
과민 반응은 아닐까 우려하면서도, 필자는 이런 카피가 이미 시대착오적인 냄새가 난다는데 적지 않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요즘이야 집안 청소며 요리며, 아이들 돌보는데 내외가 어디 있을까. 물론 남녀가 5대 5는 아닐지라도 시간 나는 대로 힘닿는 대로 남성이 집안일 하는 주부를 조력하는 일이야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생활’에서는 양성 평등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조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의 견고한 틀이 여전하다.
교회는? 더 심해 보인다. 지난 2004년에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산하 여성소위원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교회 안에 성 차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남성, 성직자가 생각하는 바와 여성 신자들이 생각하는 바가 크게 차이가 난다.
여성소위의 ‘한국교회 여성사목 방향 정립을 위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100점으로 환산할 때 교회내 성차별 유무에 대해 37.4점, 성직자들은 51.1점으로 나타났지만, 수도자들과 여성 신자들은 각각 75.8, 55.6점으로 강경한 입장을 표시했다.
실제 각 본당 조직을 보면, 온갖 본당 일은 여성들이 다하는데, 정작 본당 내 각종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목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여자라서 행복한 이유는 좋은 냉장고 사서 집안일 편리하게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식의 사고는 자체로 이미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시대적 흐름을 호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건 “여자라서 햄 볶아요”와 다르지 않다. 남자도 햄뿐만 아니라 감자도 볶고, 김밥도 말 수 있다. 여자만 햄 볶을 이유는 없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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