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나그네살이의 종료’
필자는 부끄럽게도 고교시절까지 수영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흥사단 아카데미 하계수련회에 참석했다가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수영을 못하던 필자는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보았지만 이미 수심이 필자의 키를 넘고 있었다. 그렇게 힘없이 떠내려가면서 필자는 ‘죽음’을 직감했다. 순간적으로 부모님, 친구들에게 잘못했던 것들을 후회했고, 예수님께 고교생 죄인을 받아 달라고 기도했다.
동시에 마음 안에서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며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극적으로 대학생형의 도움으로 구조되었다. 그 이후 필자는 한동안 물가에 가지 못했다. 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음이 두려웠다.
죽음은 우리가 일상 안에서 체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이자 엄연한 현실이다. 인간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제한된 삶을 살고 갈 뿐이다. 어쩌면 인간은 탄생 순간 이미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죽음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에 인간적인 갈등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초연하게 수용할 수 있을까?
필자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본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죽음을 인식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병화 시인은 시 ‘한걸음’에서 “인간은 누구나 사망의 사이 한걸음을 두고 인생에 잠시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인간은 잠시 세속에 소풍 온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인간이 죽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신앙은 커다란 역할을 한다. 필자가 늘 존경했던 예로니모라는 할아버지가 계시다. 그 분은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도 성호를 그으며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아침 새벽미사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80세에 돌아가셨는데 80세가 되시던 새해 첫 날, 필자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시면서 당신의 장례식에 꼭 와달라고 부탁까지 하셨다. 정말 그 해 겨울에 돌아가셨다. 그 해, 어느 날부터인가 전혀 식사를 못하셨고 나중에는 물도 마실 수가 없어서 입술에 활명수 한 모금만 추기셨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꿈속에서 성모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났다고 좋아하셨고, 임종 때가 돼서는 본당신부님이 출장 중이셔서 안 계셨기 때문에 신부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3일간을 기도로써 버티셨다. 그리고 본당신부님으로부터 노자성사를 받으시고 다음 날 새벽에 귀천 하셨다. 귀천 하시던 그 순간까지 할아버지는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으셨고, 오히려 행복해 하시던 그 모습이 필자를 사제로 만들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홀로 죽는 외로운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죽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결과적으로 종말이며 동시에 완성이다. 죽음은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써 육체적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위격적 완성이 내면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칼 라너의 표현으로,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며 동시에 ‘나그네살이의 종료’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존재이기에 세속의 불완전한 삶 안에 남아있지 않고 다시 본래의 자리인 하느님 나라에서 영복을 누려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칼 라너는 아담과 이브가 설령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죽음은 존재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왔으니 바로 그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을 소풍놀이로 비유하면서 이 놀이를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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