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강의 중에 한 분이 “선생님은 모태신앙 이세요?” 하고 질문을 했다. “아니다”라고 했더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해하는 눈치다.
난 별로 어렵지 않게 “어릴 때 놀던 놀이터가 성당마당이었거든요. 그래서 늘 그 마당 안에 있는 느낌 이예요”하고 답했다. “보세요. 지금도 성당 마당을 바라보고 있잖아요. 벗어날 수가 없다니까요.”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벚꽃과 군항제로 유명한 진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탑산 아래 중앙성당으로 기억이 되는데 벚꽃이 필 때면 성모동산 위로 하얗게 휘날리던 꽃비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수녀님께서 들려주셨던 수호천사이야기에 감동해서 지금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평안한 밤을 위해 꼭 수호천사에게 기도를 청한다.
서울 시내 한복판. 중구 중림동에 위치한 가톨릭교회음악대학원 내 나의 연구실은 창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지라 해가 들지 않아 겨울에 추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여름에는 서늘하고 창을 통해 보이는 고즈넉한 약현성당의 그림엽서 같은 모습은 연구실에 들르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전해준다.
잠깐 짬을 내 차를 마시며 봄 햇살을 담고 있는 초록나무와 꽃으로 둘러싸인 성당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일상의 소란스러웠던 모든 일들이 잊혀지고 감사기도가 절로 나온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 평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저녁 6시. 삼종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이런 기쁨 안에 생활할 수 있는 은총 주심에 감사기도 드린다.
박명랑 (아가타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