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학과 2학기 수시합격!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합격소식에 울먹이며 내 품에 달려드는 나의 딸 로사를 가슴에 안았다.
뇌출혈로 8년전 아무말 없이 세상을 떠나간 작은 형의 딸. 평소 입버릇처럼 둘째 아이는 내가 키우겠다고 했는데, 그 조카 딸 로사가 3년 전 인근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우리 집을 찾아 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를 잃고 심한 사춘기를 겪었다. 사제생활이 바쁜 나는 얼굴 한번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고, 조카딸을 데리고 있다는 것을 신자들이 안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쉬쉬하며 살았다.
모든 것을 잘 적응해 준다는 것이 고마우면서, 한편으로 바빠서 관심을 보이지 못한다는 미안함을 이것 저것 잔소리로 늘어 놓았다. 신부의 조카라는 부담감을 주면서 아이에게 스트레스와 강박감을 주기도 했다. 멋을 내는 아이를 야단했고, 용돈도 헤프게 쓴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어싱을 한다고 코를 뚫고 나타난 조카딸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밤늦게 남자친구를 만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관계는 점점 냉전과 대립의 관계로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아이에게 손찌검이 올려지고…. 우린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고 있었다. 서로의 갈등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고, 서로의 책상에 미안함과 용서의 편지가 오고 갔다. 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올수록 초조와 불안, 긴장감으로 잠 못 이루는 딸아이를 위해 신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딸을 문예창작과에 거뜬이 합격했다. 60대 1의 경쟁에서 합격한 것이다. 나도 울고 딸도 울었다. 하늘에 있는 작은 형이 얼마나 기뻐할까? 너무나 고맙고 대견했다. 그동안 서로에 대한 오해, 그리고 갈등과 대립은 오늘의 합격을 위한 변주곡에 불과 했고, 로사와 나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요즘 나는 대학을 다니는 나의 딸 로사와 연애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는지 안부를 묻고, 아침밥을 함께 준비하고 과일을 깍으면서, 하루 일과를 같이 나누며 차를 마신다. 그리고 수시로 재미있게 보내고 있는지 문자를 보내면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행복해 하고 있다. 이렇게 신부인 내게도 세상에서 더 없이 사랑하는 나의 딸 로사가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하며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하늘에 있는 작은 형! 로사와 갈등은 많았지만 서로가 긴 터널을 잘 지나왔다오.
로사가 그렇게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으니 형이 제일 기뻐하리라 믿어. 나는 늘 형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서 안타깝고 미안하다. 내가 로사를 내 딸로 잘 키울게. 남부럽지 않게 예쁘게 잘 자라도록 형이 많이 도와주고 지켜 줘. 평소에 늘 말없이 멋쩍게 웃는 형의 모습이 오늘은 너무 많이 보고싶다. 형! 형! 형!”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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