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연 전시회와 유네스코 업무 등으로 나는 지난 20여 년간 간헐적이지만, 마치 누군가에게 이끌린 스쿠루지처럼 문명과 비문명 지대를 거의 동시에 수없이 오가는 경험을 해왔다.
그 가운데 나름대로 내린 피상적인 결론은 “조금 더 영악스럽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뿐 지구는 정말 한 ‘동네’”라는 것이었다.
케냐의 마사이마라(Masaimara) 국립공원의 넓은 평원에서 나는 꽤나 익숙한 모습의 얼룩말 등의 야생동물 무리를 만났었다.
그러나 거기서 나는 미처 짐작못했던 엄청나게 풍겨오는 분뇨 냄새와 먹을 것이 부족해 몹시 말라 뼈를 앙상히 드러낸 어깨와 등골과 마주쳐야 했다. 마치 굶주린 아이들의 퀭한 눈을 보듯 안쓰러웠다.
현지인의 이야기로는 이들 초식동물들은 하루 고작 30여분의 숙면시간을 빼고는 항상 도망칠 준비자세로 졸면서 풀을 뜯는다고 했다. 사자들이 움직일 때마다 먼지를 일으키며 이리저리 피해 서성거리고 있었다.
주로 동트기 전 행해지는 사자들의 일과의 재물로, 실로 별다른 저항없이 고단한 삶을 접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광경을 먼발치서 지켜보면서 흔히 말하는 ‘정글의 법칙’이니 ‘약육강식’이니 하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돼지 나폴레온이 마지막엔 사람으로 보이듯 순순히 죽음을 맞는 초식동물이 그 순간 ‘무욕(無慾)의 순교자’로 비쳐진 것은 지나친 감상주의 탓이었을까?
이광미 (앙즈 성신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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