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종말’ 위기 직면한 우리나라
죽은 귀신도 벌떡 일어나 일손을 돕고, 부지깽이도 일손을 돕는다는 바쁜 농사철이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마늘과 양파를 뽑아야 하고, 감자도 캐야 한다. 하지가 오기 전에 모를 다 심어야만 수확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정부에서 수매를 하든 말든 수 천 년 우리 겨레를 먹여 살려온 밥을 먹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모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모를 심고 나면 바쁘게 여러 가지 콩도 심어야 한다. 이미 심어둔 고추·가지·옥수수·토마토·오이·고구마·호박·남새(채소) 들도 가꿔야 한다.
그래서 농사철에는 사람만 살이 빠지는 게 아니다. 개도, 소도, 닭도 모두 살이 빠져 홀쭉하다. 농사철이라 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도 제때 밥 챙겨 먹기 어려운데 때맞춰 집짐승들 챙겨 먹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주인이 논밭에서 지쳐 돌아오면 집짐승들은 반갑다고 울어댄다. 얼마나 반갑겠는가.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어야 사니까 말이다.
식구들과 함께 사천 골짝에 ‘매실 따기’ 일손을 돕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갔다. 매실 농장 주인은 올해 일흔여덟이고 그이의 아내는 일흔일곱이다. 이 정도 나이면 그냥 집에서 쉬면서 편안하게 보내야 하는 나이다.
그런데도 해보다 먼저 일어나 논밭에 나가 해보다 더 늦게 집으로 돌아간다. 마치 농사일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부지런히 일을 한다. 나쁜 생각을 가지고 싶어도 일에 지쳐 누우면 잠부터 쏟아지니 나쁜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다.
매실은 며칠만 늦게 따도 노랗게 익기 때문에 제때에 따지 않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져 버린다. 농부들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 일손을 구하기 위해 전화통 앞에 앉아 밤늦도록 전화를 건다. 돈을 준다해도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애가 탄다. 하루 임금을 20~30만 원 준다 하면 서로 일하겠다고 몰려들 테지만, 그렇게 주고 나면 몇 배로 적자가 날 것이 뻔하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가 탄다. 그런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바쁜 농사일을 뒤로 미루고 매실밭으로 간 것이다.
돈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당이고 예배당이고 절이고 지어서 돈이 안 된다면 누가 짓겠는가. 의사고 한의사고 약사고 교사고 교수고 박사고 변호사고 할 것 없이 돈이 안 된다면 누가 그 힘든 일을 하겠다고 ‘머리 터지도록’ 공부를 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돈에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돈만 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똥파리처럼 몰려들지 않겠는가.
여기저기서 겨우 구한 일꾼들은 모두 다섯 사람이다. 일꾼 가운데 가장 젊은 사람(?)이 일흔이 지난 이웃 할아버지다. 자리에 떨어진 매실을 주워 포대에 넣는 일을 하는 일꾼들도 칠팔 십 남짓 된 아지매(아주머니)들이다. 농촌에서 나이 쉰이면 새댁이고 예순이면 헌 새댁이고 일흔이면 아지매고 여든이 넘어야 할머니라 부른다. 나는 아지매들과 그리고 할머니들과 함께 점심을 나누어 먹고 잠시 쉬는 틈에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 10년 뒤 우리 농촌은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우리 노인들 죽고 나면 끝나는 거지.” “끝나다니요? 끝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수입해서 먹고 살겠지. 내 아들 녀석들도 아무도 농사 안 지으려고 해. 며느리고 손자고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다 싫어해. 오늘도 아들 녀석한테 매실 따러 올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까짓 거 돈도 안 되는데 내버려두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탁 끊어.”
“할머니, 언젠가 식량을 수입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면 어쩌려고요?”
“그때는 나 죽고 없어질 텐데 무어 걱정이야.”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는데 낮에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자꾸 생각났다. ‘나 죽고 없어질 텐데’, ‘나 죽고 없어질 텐데’ 가슴이 많이 아팠다. 우리는 죽고 나면 그만이지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지면 무얼 먹고 살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소중한 농사를 아무도 지으려고 하지 않으니….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아, 지금은 농사철이다. 살 뺀다고 도시 공원으로 밤낮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아! 쉬는 날이면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공기 좋고 물 좋다는 골짝마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사람들아! 먹을거리와 환경이 오염되고 온갖 몹쓸 병들이 아이들을 괴롭히는데 언제까지 도시 콘크리트 속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할 것인가? 그만, 제발 그만, 헛된 몸짓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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