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공산 정권의 탄압으로 희생되거나 한국 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조사가 시급하다. 특히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자료와 기록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들에 대한 자료 수집이나 증언 채록은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과제이다.
물론 성직자나 수도자, 신학생과 소수의 평신도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미흡하나마 자료 조사와 증언 채록이 이뤄져 있기도 하지만 이는 전체 희생자들의 규모에 비해서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는 한국 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대규모 박해 사실과 당시 희생된 이들이 단지 전란으로 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용감하게 증언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순교자적인 삶을 살았음을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 초기 교회 박해 시대에 순교하고 시복시성이 된 순교 성인들에 못지 않게 이 시기에 희생된 그리스도인들 역시 순교자로서 현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이 시기는 우리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또 다른 박해기의 의미를 갖는다.
당시의 시대적 환경이 지닌 특성상 이들에 대한 자료는 매우 미미하며, 있다고 해도 거의 정리가 안된 상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교회 안에 흩어져 있는 모든 사료들을 발굴하고 취합하는 일이다. 아울러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줄 수 있는 분들이 모두 고령이라서 그 대부분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점은 이 작업의 어려움을 더해준다.
다행히 최근 들어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순교자 36명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작업은 하나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교구 설정 60주년을 앞두고 교구사 편찬 작업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현대 순교자들에 대한 조사 작업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최근 주교회의 차원에서 각 교구에 현대 순교자들에 대한 조사 작업을 권고한 것도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순교 정신이다. 자발적인 신앙의 수용과 그에 이은 숱한 박해, 그 고통을 이겨내고 순교의 피로 이룩한 한국교회는 이제 근현대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던 한국 전쟁 전후의 순교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
그 시발은 당시 순교자들의 행적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는 무엇보다도 깊이있고 체계적인 연구 조사 작업을 요구한다. 이제 전체 한국교회가 나서 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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