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영화를 감각으로 즐긴다. SF나 공포물, 그리고 에로물까지. 의미와 메시지로 즐기기에는 40대 남성 가장의 현실이 꽤 버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장에서 오랜만에 관람한 ‘밀양’은 영화가 말초적 감각에 호소하지 않아도 재미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애당초 이번 나들이는 봉사였다. 멜로 취향인 아내는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여자의 사연으로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했지만 풍자적인 할렐루야에 짜증이 나고 말았다.
‘밀양’, 비밀스러운 햇볕(Sec ret Sunshine)이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인간’ 예수에게서 느꼈던 위안과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수많은 신학적 논쟁과 이단까지 야기한 어려운 주제이고, 알기보다는 믿어야 할 교리에 속한다. 그런데 필자는 예수의 인성 쪽에서 더 위로를 받는다. 절대자 예수의 신성은 영생의 희망을 주지만 일상에서 직접 피부로 느껴지긴 어렵다.
고통이 두려워 울부짖고, 병자에게 연민을 느끼며, 성전에서처럼 불같이 화를 내는 인간적인 면모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 내게 있는 두려움, 동정심과 분노를 예수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역으로 그분의 사랑과 믿음이 내게도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가 그리는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들이다. 약간이라도 균형이 흐트러지면 통속적이 되거나 편협하게 될 인간적 면모와 심리들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예수쟁이’들이요, 다른 하나는 여주인공이다. 예수쟁이들에 대해서는 자유의지를 배제한 ‘과도한’ 신앙생활을 풍자하듯 묘사됐다. 하지만 결코 가식과 허위의 집단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사과를 깍던 칼로 손목을 긋고 하늘을 흘겨보며 “보여?” 라던 여주인공. 하지만 그녀는 이내 문 밖으로 뛰쳐나가 ‘살려 달라’고 한다. 극도의 절망과 최후의 저항, 하지만 여전히 삶을 향한 끈을 놓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모습, 그게 인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예수쟁이들과 여주인공 모두에게 깊은 애정을 느낀다. 자기 방식으로 구원을 청하며, 모두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와 똑같이 인간적이다.
감독은 구원이 하늘에서가 아니라 땅에서, 결국 동료 인간들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구원은 추구하고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햇볕처럼 은밀하게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두 가지 이야기를 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전인수로 해석하면, 구원이 땅에서 오든 하늘에서 오든 그건 결국 인간의 개념이다. 애당초 구원은 우리 곁에 놓여 있었고, 하늘이나 땅 어디로부터도 다가올 수 있다.
우리는 고통과 좌절, 배신감 속에서 몸부림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구원을 발견한다. 필자는 밀양의 감동을 바로 여기, 딜레마와 역설이 혼재하는 인간 모습에서 발견한다.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서야 드러나는 구원과 해방. 그리고 고통과 절망 그 자체가 구원으로 가는 여정이라는 깨달음, 그 여정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들로 인해 필자는 위안을 얻는다.
앞서 말했듯, 이 위안은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사실로 얻는 안도감과 같은 느낌을 준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박영호 취재팀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