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 말씀 안에서 늘 남을 향해 봉사하는 삶을 살다 간 영혼은 하느님 대전 안에서 꽃밭에 물주며 산다던 내 딸 권하정(수산나). 하늘나라에서 화창한 햇살 아래 예쁜 꽃을 가꾸며 잘 살고 있겠지.
현실같지 않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온 가족이 오열했던 몇 달 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죽음으로 엄마와 아내를 보내야만 했던 초등학생 두 딸과 젊은 아버지. 아무리 통곡하고 아무리 목놓아 불러 보아도 대답없던 내 딸 수산나. 한 번 감아버린 두 눈은 영영 뜰 줄을 모르고 다물어 버린 무게실린 입술은 한 마디도 대답할 줄 모르던 너. 너를 향해 기도하던 남천본당 수많은 자매님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3일간의 가련한 네 영정은 어찌 그리도 슬피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피를 토하며 울어본들 다시 올 수 없는 너를 두고 제발 부활하여 저 어린 것들을 지켜 달라고 하느님 아버지께 애원하던 나.
아침이 오면 책가방 메고 바쁘게 움직이는 두 딸의 마음 속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함께 자라면서 어느날 바라보면 예쁜 대학생이 되어 할머니 앞에 서 있겠지.
흐르는 시간 속에 눈이 뭉게 지도록 눈물이 마르지 않던 어느 날, 내 앞에 하느님의 영광이 있었으니…. 대대로 내려오는 불교 집안에서 자란 사위가 세례를 받던 날. 어린 두 딸을 곁에다 두고 목마르게 원했던 성가정을 비록 아내가 없어도 꿋꿋이 지켜가는 모습에 얼마나 내 마음이 든든했는지 모른단다.
12년 전 부부가 하느님 앞에서 손가락 걸고 맹세했던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할 일. 첫째, 남편이 천주교인이 되어 열심히 하느님을 믿는 것. 둘째, 언젠가는 시골 외딴 마을에 누가 공소라도 짓게 되면 힘을 보태 꼭 건물을 완성하자던 굳은 약속. 먼저 보낸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례받은 사위 막시모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단다.
“외롭고 어두운 긴 긴 터널을 빠져나와 환한 햇살을 눈이 부시도록 바라볼 수 있는 그 날이 저 가엾은 가족에게 올 수 있게 하느님이 영광 주시어, 엄마와 아내를 아픈 기억 속에서 하루 빨리 잊게 해 주소서.”
전옥련(이레네·부산 남천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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