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작고하신 P신부님의 권유로 이천(利川)에 작업실을 마련한지도 어느새 10년이 다돼간다.
이젠 동네 어귀 개짖는 소리에 실려오는 거름냄새, 앞 논에서 밤새 들리는 개구리 소리도, 도시의 소음만큼이나 익숙해졌지만 얼마 안 되는 텃밭 가꾸는 일은 아직도 서툴기만하다.
작년 가을 일이다. 사람들이 유기농이니, 무공해니 해서가 아니라 이웃에 사는 분들이 워낙 부지런히 가꾸시는 바람에 나도 따라, 해마다 상추며 고추, 토마토 등을 심었고 가을이면 배추에 비해 벌레가 덜먹는 무우를 심어, 그런대로 잘 먹던 터였다.
늘 하던대로 잘 생기고 혈통(?) 좋아보이는 무씨를 사다 심었고 비료도 미리 주었었다. 싹이 나고부터는 가뭄에 마를까, 더 잘 크라고, 틈만나면 수시로 물을 주었다. 드디어 김장때가 돼서 뽑아보니, 스모 선수의 다리만큼이나 실하고 희멀겋게 잘 자라 있었다. 어떤 건 품평회에 입상할 만큼 커서 들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동치미와 깍두기가 익을 무렵 막상 열어보니, 겉이 무르고 멀컹한게 전같지 않았다. 실패작이었다. 나눠먹는다고 또 많이도 담았던 터라 맛없이 먹다 남은 걸, 욕심과 함께 버리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냥 놔두었으면 될 걸, 단지 물을 많이 많이 준게 화근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 토박이 분들이 무우밭에 물 주는 걸 본 적이 없다.
요즈음 아이들 키우는 젊은 엄마들도 나 같은 실수를 하는 건 아닌지…. 경우에 따라 스스로 자랄 수 있게 그냥 지켜 볼 일이다.
‘방임보다는 제재가 낫다’는 교육이론이 있긴 하지만.
이광미(앙즈·성신여대 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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