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뜨거운 날씨에 장마까지 오락가락하면서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장마가 끝나가면 사람들은 등짐을 메고 들로 바다로 산으로 길을 떠날 것이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먹고 사느라 힘든 일상을 벗어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일이다.
이른바 선진국 사람들은 휴가철마다 한 달 이상씩 길을 떠난다고 한다.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서 최소한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일은 없는 사람들이기에 애써 벌어둔 돈으로 휴가철마다 이웃나라로 휴가를 즐기러 간다니 아등바등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다.
그래도 어쨌든, 기껏해야 사나흘이겠지만, 일년에 며칠 주어지지 않는 휴가나마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는 사람들의 분주한 휴가 행렬은 꽤 번잡한 휴가철을 만들 것이다.
‘휴가’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 주어진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닐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휴가는 과도한 음주가무의 허락받은 일탈의 기간일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평소에 미진했던 과제들을 보충하는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필자에게 휴가에 대한 욕심은 이것이다. 느리게 가자는 것. 일부러 걸음을 늦추자는 것. 진일보를 위한 잠시의 충전도 아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의 시간도 아니다. 땀을 흘리며 봉사를 할 생각도 없고, 있는 돈 흥청망청 쓰며 즐기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물론 휴가는 바쁜 가장에게는 일하느라 함께 하지 못했던 가족들에 대한 봉사이고, 다른 가족들에게는 직장에 가장을 뺏긴데 대한 보상의 시간이기도 하기에 소정의 노력봉사가 요구되긴 한다.
하지만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사안일. 그것이 필자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휴가이다. 왜 굳이 무엇을 해야 하며, 왜 굳이 미래를 위한 재충전이 필요한가.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휴가를 재충전의 시간으로 삼으려면, 그것이 또 하나의 노동이 되고 말 것 같다.
하느님께서는 엿새를 일하시고 하루를 쉬심으로써 인간에게 휴식의 가치를 일깨워주셨다. 하느님이야 무슨 휴식이 필요하실까. 다만 인간이 힘들어 할 것 같기에 그러신 것일게다. 자의든 타의든 인간이 혹사 당할까봐 의무적으로라도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몸소 쉬신 것이다.
천성이 게으른 필자는 휴가조차도 반드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소산이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휴가조차도 허투루 쓰면 뒤처질지 모른다는 현대인들의 그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의식이 안타까운 것이다.
종일 방바닥에서 뒹군들 어떠랴,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 일어난들 어떠랴. 불과 며칠 허송세월 한다 한들 그것이 어찌 그리 대수이겠는가. 누워 있다가 허리가 아프면 일어나 라면 하나 끓여먹고 다시 누운 들 어떠랴.
물론 며칠 안되는 휴가를 누가 그리 쓰겠는가. 필자는 다만 그 마음가짐을 일러 하는 말이다. 느리게 가도 된다. 평소에 워낙 바쁘고 빠르게 다니는 우리들이기에 며칠쯤은 천천히 가도 된다는 것이다.
항상 누군가를 앞질러야 하고, 언제나 무엇인가를 이뤄야 한다. 멍하니, 먼 산 보는 일은 어리석고 게으른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아무리 바쁘게, 아무리 전력투구를 한들, 하느님 입김 하나로 이룰 일보다 더 큰 일을 할까.
열심한 삶은 좋은 일이다. 하느님이 선사하신 귀한 시간을 허투루 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며칠쯤 발길을 멈추고 멍하니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 흠뻑 빠져 있는 일이 허송세월은 아닐 것이다. 천천히 걸어도 하느님께서는 내 곁에 계신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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