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교사 질 끌어올려 공교육 수준 높이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섯 달 앞두고 또 ‘내신파동’이 터졌다. 고교 학력격차가 크다는 걸 뻔히 아는 몇몇 대학에서는 내신 4등급까지 만점을 줄 움직임을 보이자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은 “일부 대학의 내신 축소 방침에 범정부적으로 대처하라”고 지시했고, 과거 군사독재시절을 연상케 하는 ‘관계 장관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정부에 순종하지 않는 대학에는 정부지원금은 물론 연구지원금까지 끊겠다며 위협한다.
이 틈새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 건 학생과 학부모들 뿐이다. 참여정부 첫 대입정책 대상자인 고3 학생들은 3년 전부터 저희들끼리 ‘저주받은 89년생’으로 부르고 있다. 정부는 공교육의 질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대입이라고 굳게 믿은 듯, ‘대충 뽑아 잘 가르치라’는 대입정책을 강조해 왔다. 그래야 중 고등학교에서 지나친 경쟁이 사라지고, 사교육도 없어진다는 논리다(물론 현실은 반대로 판명됐다).
그 하이라이트가 2005년 발표된 내신?수능 9등급이다. 그 전엔 원점수 표준점수 등등이 나와서 그래도 학력차를 가려 신입생을 뽑는 게 가능했는데, 올해 대입부터는 이게 아예 불가능해졌다. 고교 평준화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물론 똑똑한 학생들을 더 똑똑하게 기를 수 있는 자립형 사립고나 외국어고 확대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 간 격차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법에도 없는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 입학제 금지) 정책’을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젠 내신 실질반영률 50%를 절대 흔들어선 안 된다는 거다.
일반학교 고3 학부모 입장에서는 내신 축소도, 확대도 썩 반갑지 않다. 좋은 학교든 그렇지 않은 학교에서든, 남들보다 덜 자고 더 공부해서 1등한 학생이 중간정도 학생과 똑같이 취급될 순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국에서도 뛰어나다는 고교의 1등과 시골학교 1등이 똑같이 취급되는 게 공평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해 진다. 대학이 설립이념과 교육방침에 따라 알아서 선발하면 간단하다.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대학은 시골학교 1등급을 뽑을 것이고, 치열하게 경쟁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대학은 특목고 4등급을 뽑을 것이다. 요컨대 정부가 대학입시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필요도, 자격도 없다는 얘기다.
정부가 진정으로 공교육의 질을 걱정한다면 대학을 들볶을 게 아니라 중 고등학교를 들볶아야 한다. 특히나 매일 학생들 앞에서 수업하는 교사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새 교육감으로 임명된 한국인 2세 미셸 리씨가 “좋은 교육의 출발점은 좋은 선생님”이라고 강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학생들 성적을 통해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고, 처벌과 보상을 하는 교육개혁에 힘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일부 교사집단은 이런 교육개혁을 완강히 거부한다. 지나친 경쟁을 자아내 인성을 파괴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럼 지금 인성교육은 잘 되고 있다는 말인지, 대학이나 기업도 인성보고 뽑아서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겠는지, 아니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인성은 완벽한지 묻고 싶어졌다.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고 공개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뒤처지는 학교와 교사가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력이 뒤떨어진 학교엔 수업 잘 하는 교사를 보내고 이들 교사엔 그만한 보상을 해 주면 학생도 학교도 좋고, 교사도 나쁘지 않다. 수업능력이 뒤떨어진 교사가 재교육을 받아 스타교사로 변신한다면 본인도 좋고, 학생과 학교도 이득이다. 물론 잠깐은 창피스럽겠지만 그 교사 때문에 학생이, 학교가 영원히 창피스러운 것보다 백 배 낫다.
그래도 이를 반대하는 측에선 성적이 다냐, 교사가 공부 가르치는 기계냐, 학교가 학원이냐 하며 정서적 공격을 해댄다. 그럼 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당신 자식은 따로 학원 보내고, 조기유학 보내고, 좋은 학교 좋은 대학 보내지 못해 안달이냐고.
학교 선생님이 내 자식은 어떻게든 잘 가르쳐 주길 바라는 게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선 교사들 먼저 달라져야 한다. 이 간단한 진리를 외면한 채 남발되는 엉뚱한 정책이 우리 아이들과 미래를 한없이 후퇴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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