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시편 116, 12)
신학생 시절에는 사제가 되면 온전히 봉헌된 삶을 제 노력과 의지로 충분히 잘 살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서품을 준비하면서 그간의 생활과 주변을 돌아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사제가 되겠다는 초등학교 5학년 어린아이의 깊이 없는 소리를 허투로 듣지 않고 성소의 길로 이끌어주신 당시의 주임신부님과 역대 주임신부님들 그리고 본당 공동체 등 많은 분들의 도움과 기도, 사랑이 태산처럼 고마움으로 밀려왔다.
그 무렵 성무일도를 드리던 중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시 115, 3) 란 말씀이 마음을 울렸고, 사제서품 성구로 삼게 되었다.
사제가 된 이후로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 사제단과 본당 공동체 그리고 신자들과 함께 하도록 불리움을 받았다. 결국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으로도 부족하여 사제로 불러주셨으니 하느님께도 한없는 빚을 지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이 주님께 받은 은혜요 사랑이니 그것을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는가?
자식이 효성을 다해도 부모님이 자식에게 베풀어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는 말씀과 더불어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라는 말씀이 자동적으로 울려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빚을 독촉하지 않으시니, 이렇게 행복한 빚쟁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살아오면서 빚을 갚기는커녕 더 늘어난다. 그래서 이 성구는 항상 빚쟁이의 심정으로, 하느님의 너그러운 사랑에 기대어 기쁘게 겸손을 살고자 다짐하게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학생시절의 순수함이 퇴색되어간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기에 그 인자하심과 자비로우심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하고 되뇌인다. 여전히 행복한 빚쟁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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