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한때 무협지에 빠져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인간 한계를 넘는 황당한 무공으로 중원을 평정하는 무협들의 영웅담은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대개 무협지에서 영웅의 궁극적 목적은 중원 무림의 평정이다. 그리고 그 필수적 도구는 비급이다. 심산유곡 어디엔가 묻혀 있는 절정의 비서(秘書)가 우연히 핍박받던 주인공의 손에 들어오고 그는 비급에 적힌 초절정의 무공을 수련해 악을 퇴치하고 중원을 평정한다.
그 무대가 되는 이른바 ‘중원’(中原)은 오늘날 중국 허난성(河南省)을 중심으로 산둥성(山東省) 서부, 산시성(陝西省) 동부에 걸친 황허강(黃河) 중·하류 유역을 지칭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중원은 중국, 난세를 만난 세상을 의미하고, 수많은 세력들의 권력을 다툼하는 장으로 일컬어졌다.
무협지는 백이면 백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지고지선의 심성을 갖춘 주인공이 온갖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고 몸과 마음을 단련해 절대 무공의 경지에 이르러 악을 물리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무협지들의 전통적인 플롯이다.
하지만 결코 그 평화와 절정의 무공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협소설은 천명에 근거한 우연으로써 이러한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전개한다. 영웅이 중원 평정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된 것이었고, 그 도구가 되는 절대무공의 비급은 수천년 동안 그 주인을 기다려왔다.
필요한 것은 운명의 때를 기다리는 일이었으며, 시험과 단련의 시간들이었다. 세상의 평정이라는 엄청난 위업이 어찌 시험과 단련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주인공은 부친이 적의 손에 죽고, 남은 가족들은 살육되거나 노예로 끌려간다. 아직 나이 어린 주인공은 창고 한 켠, 짚더미 뒤에서 혈육들이 척살되는 장면을 눈에서 피를 쏟으며 바라본다.
비록 경박한 선정성을 앞세운 삼류 무협지들이 무협의 수준을 극도로 떨어뜨리곤 하지만 문학작품으로서의 품격을 지닌 문학 장르로서의 무협소설들은 인간사의 진리를 나름대로 품고 있다. 그 전통적인 무협의 플롯에서 독자들이 얻는 교훈 중 하나는 바로 대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천명을 거슬러서는 안되고, 주어진 소명에 상응하는 피와 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험과 단련에 직면한다. 천명으로 비급을 얻는 우연을 얻는 자는 극히 소수의 영웅일 뿐이다. 나머지 필부들은 그저 자신의 노력에 의지해야 한다. 영웅조차 자기에게 주어질 비급을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험과 단련을 거쳐야 하는데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이 어찌 시험과 단련의 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다지 큰 노력 없이도 많은 성과를 얻길 기대하곤 한다. 우리 사회는 종종 그런 심사를 조장한다. 로또가 그러하고, 각종 복권이 그러하며, 각종 범죄 뒤에 도사린 일확천금의 심리가 그러하다. 신앙에서조차 우리는 종종 굳센 믿음이 그저 공짜로 주어질 것으로 착각하다가 실망하고 좌절한다.
무슨 일에서든, 100%의 성공에는 100%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 절반의 노력으로는 반의 성과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주일미사를 격주로 나가면, 우리 신앙의 수준은 절반 밖에 안될 뿐이고, 하루 한 번도 기도하지 않는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단 한 번의 주님의 응답도 받지 못할 것이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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