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람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어야
도시 사람들은 앞집 뒷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 도둑이나 강도가 살든, 밤마다 사람을 토막 내는 살인자가 살든, 두부에 염산을 섞어서 파는 사람이 살든, 당면에 고무가루를 섞어서 만드는 사람이 살든, 중국산 더덕에 황토를 발라 국산 더덕이라고 속여서 파는 사람이 살든, 제 식구 먹는 음식은 깨끗한 국산 농산물이면서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은 국산이든 중국산이든 가리지 않고 싸고 양 많이 주는 농산물을 쓰는 식당 주인이 살든….
도시 사람들은 이런 무서운 사람이 앞집에 사는지 뒷집에 사는지 몰라도 살아갈 수 있다. 대부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도시는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몰라도 나만 잘 살면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남한테 조금 피해가 가더라도 달려든다. 언제나 닫혀 있는 공간이라 (더구나 아파트는) 바로 옆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죽어서 한 달이 지나도 모르고 사는 게 도시 사람들이다.
농촌 사람들은 앞집 뒷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면 살아갈 수가 없다. 할미꽃 피는 무덤은 누구네 무덤인지, 마을 들머리 정자나무 가지는 언제 부러졌는지, 언덕 아래 풀만 자란 저 산밭은 누구네 것인지, 잔칫날 돼지 잡을 때 쓰는 긴 칼은 누구네 집에 있는지, 누구네 소가 일 잘하고 힘이 센지, 누가 화학비료와 농약을 많이 뿌려대는지, 해마다 고추농사는 누가 가장 잘 짓는지, 가장 말조심해야 할 사람은 누군지, 돈 많으면서 구두쇠 짓을 하는 사람은 누군지, 누구네 자식이 실직을 했는지, 산청댁 할아버지 피우는 담배는 몇 째 아들이 사 준 것인지, 개울에 물이 줄어들면 누구네 논에 물을 대고 있는지, 이런 작은 일까지 모르면 살아갈 수 없다.
농촌은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늘 열려 있는 공간이라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도둑질을 하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해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다리 뻗고 잠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디에 몸과 마음을 두고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는다. 사람한테 다가오는 몸과 마음의 병은 사람이 흙을 떠나서 살기 때문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는다.
그럼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가만히 눈을 감고 스스로 물어보라. 언제까지 자동차를 타고 빠르고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 후손들의 삶터인 산과 들, 그리고 논밭을 짓밟고 파헤쳐 찻길을 만들어야 하는지. 언제까지 맑고 깨끗한 골짝마다 러브호텔과 식당을 지어야 하는지. 언제까지 혼인잔치 돌잔치 칠순잔치 등 손님 대접을 뷔페나 식당에서 사랑과 정성보다는 돈을 주고받는 행사로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하느님’을 팔아서 시멘트 숲인 메마른 도시에 성당을 지어 사람을 모을 것인지.
그 메마른 시멘트 건물 속에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아무리 좋은 강론을 하면 무엇하겠는가. 겉으로 좋은 말을 한다고 누가 알아듣기나 한단 말인가. 이제 더 이상 입으로 사는 시대는 끝났다. 수천 마디의 좋은 말보다, 수만 권의 좋은 책보다 실천하는 삶이 필요한 시대다.
“길이 어려울수록, 그 길을 택하여 가라. 그리고 세상이 버린 것들을 그대가 취하라. 세상이 하는 일을 따라 하지 말라. 모든 일에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라. 그리하여 그대가 찾는 그 길에 가장 가까이 도달하라.”
그래서 스스로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언제까지 성직자와 수도자, 교우들을 도시 시멘트 건물에 가두어 괴롭히며 살게 할 것인가. 땀 흘리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때론 땀을 더럽다고 여기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입으로 하느님을 부른다고 하느님이 오시겠는가.
그렇다. 이제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도시는 어느 누구한테 물어봐도 아이고 어른이고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도시에 성당이나 교육관을 지어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만든 자연의 품으로 사람들을 돌려보내야 한다. 마음이 젊고 용기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어 자연으로 돌려보내 제 손으로 흙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지원을 해야 한다.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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