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어리숙한 사람이 길을 가다 보니 가느다란 줄기 끝에 엄청나게 큰 박이 달려 지붕 위에 얹혀져 있고 더 가다 보니 커다란 떡갈나무에는 작은 도토리가 달려 있었다.
“하느님은 불공평하시구나. 박처럼 큰 열매를 큰 나무에 열게 했으면 지붕에 얹지 않아도 될 텐데…”하고 생각하다가 떡갈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와 도토리가 우박처럼 온몸에 떨어졌다. 정신 없이 몸을 피해 달려가면서 “하느님은 공평하시다. 큰 나무에 큰 열매였으면 난 벌써 죽었을거야”했다고 한다.-
50여 년 전 어머니가 들려주신 구연동화다. 출처는 분명치 않다.
검푸른 여름날 저녁하늘에 별이 촘촘해질 때, 소복(素服)여인처럼 하얗게, 하얗게 피는 박꽃-.
그런데 어느 날 어스름 불빛에 살펴보니 꽃이 서로 입맞춤하듯 맞닿아 있는게 아닌가. ‘아, 그렇지. 생물시간 들었던 자가수정(自家受精)이 저런 거구나.’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게 믿었다. “박꽃은 밤에 피니까, 벌 나비의 도움이 없으니”라고 해석까지 해가면서.
‘박각시 나방이’
이 생소한 이름의 곤충이 벌 나비의 야간 대역이란 걸 안건 얼마 전이었다. 박꽃이 초저녁부터 환하게 피는 건, 이 곤충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고, 맞닿아 있는 건, 행여 꽃가루가 다칠세라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꽃의 자가수정을 막기 위해 암술은 수술보다 높게 만들어 놨다는 걸 책에서 본 것 같다.
자연을 거스르는 건 인간 뿐인가.
창조주의 위대함이여! 공평함이여! 인간의 미욱함을 용서하소서.
이광미(앙즈·성신여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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