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적 사형제도 폐지하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권이 신장됨에 따라 사형제도는 폐지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비인간적인 사형제도 폐지를 회원국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의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근현대 한국불교의 선맥을 크게 떨친 효봉 큰스님의 이야기입니다. 효봉 큰스님께서는 구한말에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에 서울과 함흥의 지방법원, 평양의 복심법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판사로 활동하셨습니다.
스님 나이 서른 여섯 살이었을 때 최초로 사형선고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몇 날 몇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자신의 직업과 존재에 대한 회의, 같은 인간에게 죽음을 선고해야 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서 고뇌하였고 그 결과 ‘법관직은 내가 할 일이 아니고 내 갈 길은 따로 있다’라는 생각으로 판사직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3년여 동안 엿장수로 전국을 유랑하다가 금강산에서 출가 수행하여 한국 불교의 선맥을 중흥시킨 훌륭한 스님입니다.
또 한 예는 여러분도 다 아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언도 받은 후 우여곡절 끝에 감형되어 후에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
만약 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 당했다면 대통령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며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경우와 같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이 집행되고 나서 후에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되어도 죽은 사람의 목숨은 살릴 수가 없는 기막힌 경우가 우리나라에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계 88개국은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도를 폐지하였을 뿐 아니라 일반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나라도 11개 나라에 이릅니다.
이 두 가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판사로서 사형 판결로 고뇌했던 효봉 스님이나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사형제도의 폐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처님 자신만이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말씀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아니 이 세상에 움직이는 생명체 모두)가 부처님처럼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란 뜻입니다. 이 말씀 속에 불교의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생명존중 사상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같은 인간이 결정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야만적이고 독선적인 사형제도는 하루빨리 폐지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세계 10위 권에 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짧은 기간 안에 민주주의가 정착된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야만적인 사형제도를 존속시키면서 어떻게 21세기 선진 문화 강국에 진입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 속히 사형제도를 폐지하여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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