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어라 거룩히 기뻐할 줄 아는 백성은, 주여 당신 얼굴의 빛 속에 걸으리다.”(시편 88, 16)
내 세례명은 베드로다. 세례명 덕인지는 몰라도 신학생 시절 나는 무척 단순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언제나 속내를 드러내놓고 살다보니 가끔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약삭스럽게 자기 이익이나 챙기는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살아갔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는 마치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처럼 매사에 신바람 나했고, 매 순간이 기쁨으로 다가왔다. 사실 그 당시 내 일상이 기뻤던 이유는 딱히 설명할 길이 따로 없다. 신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하나만으로 지극히 단순하리만큼 그냥 좋고 기뻤다.
시간 속에서 이 일상의 단순한 기쁨은 자연스럽게 “거룩한 기쁨”에로 옮아갔다. 하느님께 맡겨진 몸,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 어찌 아니 기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이 기쁨이 조금씩 나에게서 멀어져 감을 느낀다. 삶의 경험이 늘어나고, 알량한 지식이 머릿속에 축적되면서 부지불식간에 하느님의 뜻보다는 내 계획을 앞세우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순간 삶은 더 이상 일상의 단순한 기쁨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의 능력이 아닌 내 경험과 내 지식에 의존하면서 내가 계획하고, 내가 주도하고, 내가 결정하려고 하다 보니 나의 기쁨은 더 이상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일 잘한다는 칭찬의 소리가 기쁨인양 느껴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칭찬의 소리는 마치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처럼 내 마음 한 구석을 허전하게 만들고 있었다.
요즘 나는 다시 일상의 단순한 기쁨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제로서 살아간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쁘고 행복한 삶을 되찾고자 한다. 사제는 자신의 능력이나 세상 것으로부터 기쁨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당신 이름으로 기쁘고, 당신의 정의로 기를 돋우는”(시편 88, 17)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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