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두고 아브라함은 주님과 한 판의 협상을 한다. 우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한탄하시는 주님, 그 분노의 손길이 두려웠던 아브라함은 주님께 다가서서 말씀드린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주님께 발칙하게도 ‘공정할 것’을 요구하며 아브라함은 쉰 명이라도 의인이 있다면 의인을 죄인과 함께 벌하지 말라고 들이댄다.
쉰 명만 있으면 용서하겠다고 한 발 물러선 주님께 아브라함은 마흔 다섯, 마흔, 서른, 스물, 그리고 열 명이라도 의인이 소돔의 성읍에 살고 있다면, 그들을 모두 용서하리라는, 참으로 너그러운 약조를 받아낸다.
추세대로라면, 주님은 단 한 명이라도 의인이 살고 있다면 소돔을 멸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죄 많은 이들 때문에 무죄한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하게 희생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아브라함은 강변했고, 주님은 그에 응답해주셨다.
섣부른 봉사, 혹은 선교활동으로 위험 지역에 나섰다가 인질로 붙잡힌 이들이 있다. 이미 일부는 참혹하게 희생됐고, 나머지 인질들 역시 위험한 처지이다.
아무리 이들의 행보가 위험을 자초한 일이라고 해도, 이들을 지금 비난하는 일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오직 하나,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원할 일이다.
도대체 이들이 왜 희생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과연 이들이 목숨을 빼앗겨도 좋을만한 죄를 지었던가? 탈레반이라고 하는 이들 무장 게릴라들은 자기 포로들과의 교환을 요구하며 이들을 해치고 있다.
무죄한 이의 죽음은 한 명이든 수백만이든 똑같은 죄의 무게를 갖는다. 부당하게 단 한 명을 해쳐도 그 죄값의 무게는 수백만 명에 대한 대학살의 무게에 덜하지 않다. 인간 생명은 그 자체로 우주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형법은 한 사람에 대한 살인죄와 여러 명에 대한 연쇄 살인죄의 경중에 차이를 두지만, 인륜은 차이를 두지 않는다. 열 명을 해친 죄값이 한 명을 해친 죄값 밖에 안된다는게 아니라 한 명이라도 해친 값은 이미 우주를 파멸시킨 것 만큼이나 중한 죄라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 민간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일 바에는 그 죄값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하겠다.
모든 종교는 무죄한 이의 희생을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 생명을 볼모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은 위대한 종교이며,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비롯한 다른 대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을 숭고한 것으로 여기며 결코 헛되이 훼손하기를 가르치지 않는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참된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신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이들이 부당하게 생명을 훼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나의 인간 생명은 하나의 우주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세상은 한 순간에 붕괴된 것이다. 그 가식의 기도에 분노를 느낀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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