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공포영화들이 쏟아진다. 정말 공포의 체험이 더위를 이기는데 도움이 될까? 인간이 공포를 느끼게 되면 실제로 더위를 잊을만한 신체적인 반응이 나타난다고 한다.
우선 자율신경계가 신체의 털 세움근을 수축시키면서 털들을 일으켜 세운다고 한다. 피부 혈관에 공급되는 혈액이 줄고 근육이 수축하기 때문이다. 더운데도 땀이 나고 방광이 수축돼 소변이 마려워진다.
더 많은 빛이 들어오도록 동공이 확대되고, 침이 줄어 입이 마른다.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고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진땀이 나게 된다. 또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과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 물질이 생성되면서 짜릿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공포 외의 다른 환경 요인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더위는 물러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운 여름날, 굳이 공포를 일부러 선택해서 체험한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공포가 실제가 아님을 전제한다. 안전함이 확보된 상태에서, 언제든지 원하면 공포에서 물러설 수 있기 때문에 공포를 작위적으로 선택해 체험하는 것이다.
공포영화들을 보면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공포영화는 어이없을 정도로 피가 튀는 스플레터(splatter), 칼이나 톱 등으로 난도질을 해대는 슬래셔(slasher), 인간의 신체로 온갖 엽기 행각을 벌이는 하드 고어(hard gore), 잔인함보다는 분위기가 한 몫을 하는, 종교성이 개입된 오컬트(ocultism)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오늘날 공포영화들은 한 가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만큼 현대인들의 공포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졌기 때문인지, 웬만한 자극으로 공포를 느끼지 않는가 보다.
어쨌든, 다양한 형태와 주제들을 갖고 있지만 사실 공포의 모티브는 단순하다. 죽음은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다. 피가 튀든, 살이 찢기든 궁극의 두려움은 죽음이다. 고통 역시 목숨이 붙어 있어 가능하다.
영화 속의 많은 희생자들은 고통을 두려워하지만 그 끝, 절정의 고통은 ‘부재(不在)’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서 온다. 고통 자체가 죽음으로 가는 전조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 역시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완전한 부재는 한층 높은 차원의 공포이다.
그리스도교 교리는 죄인의 말로를 영원한 지옥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 사실 지옥불의 단죄는 그 뜨거움의 고통보다는 영원히 버림받는다는 존재론적 고통이 그 참 뜻인 듯 하다.
하느님께 버림받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죽음일 것이며,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부터 무한함에 대한 일말의 희망까지도 빼앗아버리는 완전한 절망의 상태, 그것이 바로 죽음일 것이다.
인간에게 상종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영성에 대한 불확실성 안에서 맞게 되는 부재의 두려움인 듯 하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공포영화들은 다양한 형태로 묘사하는 것이리라.
어쩌면 고통까지도 인간은 익숙해질 법하다. 하지만 아무리 간 큰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서야 어찌 초연할까.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단 한 번의, 돌이킬 수 없는 존재론적 체험이 죽음이라고 할 때, 공포영화들이 죽음을 모티브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정말 큰 공포는 이처럼 죽음 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관장하시는 분, 그 분을 경망되이 거스르는 것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일이 주일미사 함부로 빠지는 것이 아닐까?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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