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에 대한 공평한 지원 아끼지 말자
‘가짜’가 떨고 있다. 미국 예일대 박사 출신으로 알려진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 사건이 드러나면서다.
10년 전 금호미술관 아르바이트생으로 큐레이터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1년 거짓말이 드러났지만 곧 다른 미술관에 취업했고, 2년 전엔 동국대 조교수로 특채 임용됐으며, 7월 광주비엔날레 예술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 사이 끊임없이 학력 위조 의혹이 나돌았는데도 신씨는 계속 부인했고, 나중엔 자신의 학위가 가짜가 아님을 증명할 자료를 찾겠다며 미국으로 출국해 버렸다.
야반도주하듯 제 나라를 떠난 신씨의 마음이 편했을 리 없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또 다른 가짜가 자수를 하고 나섰다. 영국 브라이턴대에서 언어학 석사를 땄다던 FM 인기 영어학습프로그램 진행자인 이지영씨가 “사실은 영국에서 1년간 랭귀지 코스와 기술전문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라며 사퇴한 것이다.
만화가 이현세씨까지 과거를 고백했다. ‘까치와 엄지’로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된 뒤 태어나서 처음 인터뷰를 하면서 우쭐댄 기분에 대학을 중퇴했다고 거짓말했는데, 이 때부터 학력이 25년간 벗어날 수 없는 핸디캡이 됐다는 얘기다.
그들은 한번의 거짓말이 사실처럼 굳어진 뒤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고 했다. 이해한다. 어쩌면 거짓말이 밝혀진 다음에 받을 벌보다 그 전에 스스로 받았던 벌이 더 혹독했을지 모른다. 거짓 학력이 들통 나지 않게 하려고 그들은 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고, 그래서 진짜 학력자 못지않은 실력을 쌓았을 수 있다. 일각에선 실력이 중요하지 학력이 무슨 대수냐며, 학력 위주의 사회를 개탄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학벌 차별은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입사지원서에 학력을 쓰는 난을 없애는가 하면, 직역(職域)에 따른 학력 제한을 폐지하는 곳도 있다.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고, 일류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이 구별되지 않게 하는 입시정책이 더 힘을 받을지도 모를 판이다.
물론 실력 있는 사람들이 단지 학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학력 위조 사건이 일어났는데 학력 사회를 비판하는 것 역시 본질을 벗어나는 일이다. 이건 마치 도둑이 들끓고 있는데 도둑 아닌 도둑맞은 사람과 도둑이 많아진 사회를 비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곰곰히 따져 보면 학력을 거짓말한 사람 중 극히 일부만이 진짜 같은 실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사실은 더 크다. 실력도 없는 가짜가 득세함으로써 되레 실력있는 진짜가 손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가짜가 진짜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통에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확률도 무시 못 한다. 즉 학력 그 자체를 경시하거나 폐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세계는 학력 위주의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세계화, 정보화와 지식 기반 경제가 확산되면서 더 많은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유능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보다 뛰어난 지식과 기술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학력이고 학벌이다. 선진국에서도 대학보다는 대학원을, 석사보다는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을 더 우대한다. 경제성장의 열매도 이들에게 훨씬 많이 돌아가고 있다는 ‘슈퍼스타의 경제학’도 여기서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여기서 소외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적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경제·사회적 배경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장학금이라든지, 학자금 대출 같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비싼 학비를 들이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교육기관이나, 제때 공부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위한 평생교육기관도 충분히 마련된다. 학력 위주 사회에 대한 문제는 이렇게 풀어야 한다. 더 많이, 더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거꾸로 차별받는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할 순 없지 않는가.
하지만 좋으신 우리 하느님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지 궁금해진다.
앞서 언급된 사람들이 신자인지 아닌지는 글쎄, 알 수 없다. 하느님은 학력이나 학벌이 좋냐 나쁘냐에 따라 누구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진 않으실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학력과 학벌 그 자체를 나쁘다고 여기시진 않으실 것 같다.
지금도 학력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평안을 찾기 바란다. 그러나 학력을 거짓말한 사람이라면…. 어서 그 짐을 내려놓기를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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