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카 17, 10)
한 때 교구청에서 청년사목을 담당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가끔 교구의 청년봉사자 혼인을 주례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참 예쁘고 멋진 한 쌍의 혼인을 주례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혼인 미사에 참여한 신랑 신부 친구들의 모습 안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입고 온 옷들이 대부분 어둡고 칙칙한 색깔의 옷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너희는 장례식에 오는 것도 아닌데, 어두운 색의 예복들을 입었느냐”고. 청년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합니다. “신랑과 신부보다 더 멋있는 옷, 화려한 옷을 입게 되면 안 되잖아요?”
생각해 보면 맞는 이야기라고 여겨집니다. 어떻게 하면 더 신혼부부를 더 예쁘게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하는 청년들의 생각이 기특합니다.
사제로 서품되던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당신께 의탁하며, 당신의 겸손을 담고 당신을 최고로 생각하며,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살지 않고 하늘의 주인님께 늘 감사하는 보은의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럼에도 혹 하느님의 옷보다도 더 멋진 모습의 옷을 입고자 했던 일은 없는지, 주인이신 하느님 보다 더 신자들 앞에서 높은 자리에 있고자 하지는 않았는지 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 부족한 종으로 살아갈 마음을 새로이 가져 봅니다.
어농성지 전담신부로 일하는 요즘, 자신들을 낮추며 겸손한 모습으로 주어진 모습에 충실한 자연의 모습을 닮고자 합니다. 때가 되면 꽃이 피며 시들고 씨앗을 만들어 뿌리고 비바람에도 의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맡기고 있는 들꽃을 보며, 오로지 주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본받고자 합니다.
종이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주인은 더 이상 종을 당신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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