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농촌·자연의 고마움 일깨워야
7월 28~29일 부산교구 장림본당 주일학교 어린이 58명, 교사 18명 그리고 수녀님이 우리가 다니는 합천 삼가공소에서 머물다 갔다.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본당마다 아이들을 바다나 숲 속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오랜만에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의 품 속에서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쉴 수 있도록 한다.
‘여름신앙학교’도 좋고 ‘물놀이’도 좋다. 이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와 삶이 달라 겉과 속이 다른 욕심 많은 어른들 세계에 갇혀 제대로 숨 한 번 쉬지 못하고 살아온 아이들이 아닌가. 입으로만 아이들이 세상의 희망이니 어른의 아버지니 하면서 떠받드는 척 하지만, 얼마나 ‘어른들의 못된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지 눈을 감고 자신을 돌아보면 거울 보듯 훤히 보일 것이다.
공부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자연이니 동무니 이 따위는 다음에 생각해야지. 어쨌든 공부 잘 해서, 남보란 듯이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서, 누가 들어도 먹고 살 걱정 없는 든든한 직장 구하고, 비슷한 배우자 만나서, 넓은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도 사고, 여유롭게 살면서 늙어서도 아무 걱정 없도록 보험도 몇 가지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난한 부모형제나 이웃들 생각하면 딱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선 내가 잘 살고 봐야지….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는 이 땅의 부모들이 대부분 이런 생각을 지니며 하루하루 사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을 만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건강한 우리 농산물을 먹이고 싶은 수녀님과 교사들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을 하여 우리 마을에서 생산한 감자와 풋고추, 깻잎들을 보냈다. 그리고 수녀님께 말씀 드려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황매산 골짜기에 ‘물놀이’하러 가기 전 30분 남짓 아이들 앞에 서서 흙과 함께 살아가는 농사꾼들의 소중함과 흙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농사꾼으로서 세상의 희망인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고, 아이들한테 꼭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틈을 낸 것이다.
“어린이 여러분! 흙이 없으면 나무도 풀도 참새도 물고기도 사람도 그 어느 생명도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고향은 흙입니다. 부산이나 김해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결국 우리의 고향은 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흙에서 난 것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고향은 흙입니다.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흙’이라고 대답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오늘, 산길을 가다가 흙과 함께 한평생 살아온 농부들을 만나면 고마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늙고 병든 농부들이 흙을 떠나지 않고 농사를 지어 준 덕택으로 걱정 없이 밥상을 차려서 살고 있으니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한 남자 어린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농부들도 돈을 받잖아요.” 이 어린이는 도시 사람들이 농산물을 농부들한테 돈을 주고 사는데 왜 고마운 마음으로 인사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어린이 여러분!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모두 열심히 일을 해서 먹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날이 갈수록 수입 농산물이 밀려들고 잘못된 정부 정책 등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조건 때문에 땀 흘려 일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답니다. 도시와 견줄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있지요. 그렇다고 농부들이 힘들고 돈이 안 된다고 모두 농사를 짓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큰일이 나겠지요. 사람이 컴퓨터나 자동차, 시멘트를 먹고 살 수 있다면야 문제 없겠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오늘, 어린이들한테 물어보시라. “행복하냐고?” 만약 어린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책임은 어른들이 모두 져야 한다.
어린이들의 몸을 지켜주는 음식조차 온갖 방부제와 농약, 화학첨가물이 판치는 나라에서, 52%가 넘는 아이들이 아토피나 천식을 안고 태어나는 나라에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밀 제품 자급률이 1%도 안 되는 대한민국에서, 수천 년 우리 겨레의 목숨을 이어준 쌀마저 ‘미국 강도들’한테 위협받고 있는 세상에서, 나라꼴이 어떻게 되든지 돈벌이만 된다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나라를 어지럽히는 어른들 속에서, 어린이들이 어디에 마음을 두고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경제논리에 빠져 농촌이고 자연이고 다 무너뜨리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도 뒤돌아볼 줄 모르는 어른들이 어찌 어린이를 걱정할 겨를이 있겠는가. 그러고도 입으로만 하느님, 하느님 부르짖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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