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시편 51, 12)
신학생 시절 저의 방에는 낙산의 아름다운 숲의 풍경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창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시시로 변하는 창 밖의 풍경을 저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특별히 기상 음악이 울리는 아침시간이면 창문을 활짝 열고 낙산의 아침 공기를 방안 가득 받아들이며 하루 새 마음을 달라고 첫 기도를 올리곤 했습니다.
희색의 도시 한 복판에서 그나마 작은 동산으로 남아 있는 신학교 낙산의 숲은, 산을 무척 좋아하는 저에게 산과 흙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작은 해방구였습니다.
저의 서품 성구는 등산을 하면서 산정에서 문득문득 바치던 짧은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이 구절이 낙산이 바라다 보이는 저의 아침 창가로 내려와 창 밖을 바라보며 바치는 짧은 기도가 되었습니다.
서품을 앞두고 모두들 서품 상본과 성구를 준비할 때 저는 너무도 당연하게, 신학교 제 방 창문 너머 아침 햇살이 비쳐오는 낙산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 서품 상본을 만들고, 아침 창가에서 바치던 이 시편구절을 저의 서품 성구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사제가 된 후 무릎이 약해져 등산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아니 어쩌면 회색 도시에서 무엇엔가 쫓기듯 일상을 바쁘게 살아오면서, 이 짧은 시편 기도는 저의 생활 속에서 희미하게 잊혀져 갔습니다.
얼마 전 사목모토에 대한 짧은 원고를 청탁 받으면서, 마치 뽀얗게 먼지가 내린 창고 속을 뒤지듯 ‘깨끗한 마음, 굳센 정신’을 살고자 몸부림치던 가장 순전했던 신학교 시절의 기억들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몇 장 남은 서품 상본을 찾아내어 사진 속에 비친 낙산의 풍경을 들여다보면서 그리운 기억들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나 그리움은 과거의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하며 하루하루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싶은 살아 있는 ‘나’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불현듯 받아든 원고 청탁서가, 서품 성구로 삼은 이 짧은 시편 기도가 지금 제 삶에서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알려준 고지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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