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순수성으로 시민단체에 힘 보태자
신앙의 사회적 실천
한국 사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90년대 들어 ‘시민운동의 시대’를 맞아 다양한 시민운동들이 곳곳에서 활발하게 벌어져 왔고 우리는 군사정권 시절의 통제받던 국민이 아니라 참여하는 시민, 세상을 바꾸는 시민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여러 영역에서 공동선과 인권, 정의 등의 윤리와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고, 사회적 약자들을 포함한 ‘가난한 이들’은 점점 더 소외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정치적 무관심 내지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 안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복음의 빛으로 올바른 ‘질서’를 모색하고 구현하고자 하는 행동으로서의 ‘신앙의 사회적 실천’은 바람직한 신앙의 핵심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에 “교회와 세계 안에서의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주제로 발표한 사도적 권고인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평신도들이 교회의 봉사와 임무에 지나치게 강렬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전문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분야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을 커다란 유혹이자 잘못으로 지적한 바 있다(2항).
즉,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교회 밖 세상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교황 바오로 6세도 ‘현대의 복음 선교’(1975)에서 평신도들에게 “현세적 질서의 쇄신을 자신들의 의무로” 알아 “행동에 나서라고 요청”하였다. 한마디로, ‘훌륭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뜻 아닐까?
‘신앙적 동기’의 의미
허나, 교회의 담은 높기만 하고 교회 안팎은 여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장애인주일에 각 본당에서 특별헌금을 걷는 ‘신앙의 실천’ 못지않게 요구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힘겹게 벌어지고 있는 장애인 인권운동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라면, 장애인주일에 본당신부가 신자들에게 “우리 주변에는 우리처럼 버스를 타고 싶어 버스에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고 이동권을 요구하며 절규하는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후원 회원 가입서를 쓰는 것도 이웃사랑 아닐까요?”라거나 혹은 “우리 성당은 입구의 문턱이 높아 장애인들이 출입하기 힘들고 엘리베이터도 없습니다. 오늘을 우리 성당을 바꾸는 계기로 삼읍시다”라는 강론을 하면 어떨까?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의 신앙의 실천, 그리고 교회 안팎을 잇는 실천에도 눈을 뜨는 것은 신앙의 아름다운 성숙일 것이다.
또 이것은 어떨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집 마당은 쓸지언정 동네 골목길은 쓸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골목길의 쓰레기가 금방 자기 집 대문 앞도 더럽힐 게 자명한데도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여긴다”는 어느 시민운동가의 지적에 ‘자기 집’ 대신 ‘자기 교회’를 대입시켜보는 것 말이다.
1981년 여의도광장에서 열렸던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는 필자에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00만 명의 가톨릭신자들이 한곳에 한뜻으로 모였다는 점 뿐 아니라, 그 큰 행사가 끝난 자리에 휴지 하나도 버려져 있지 않아 언론에서도 그 사실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행사를 주재한 성직자가 행사 마무리에 “우리 모두 속죄의 뜻으로 휴지 하나 남기지 말고 갖고 가자”는 취지의 말을 한 후 모두가 한뜻으로 그것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앙의 실천’은 ‘시민참여’의 시대에, 그리고 독재정권 몰락 이후 ‘신앙의 사회적 실천’이 크게 줄어든 이 시대에 새로운 의미와 희망을 준다. 신자들을 움직이는 ‘신앙적 동기’가 주변 환경을 사랑하고 보존하자는 환경운동 등의 ‘시민적 동기’로 이어진다면 참여가 늘 메마른 우리 시민사회는 엄청나게 큰 저수지의 물을 만나는 셈일 것이다.
“밤늦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로운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라는 찬송가 구절처럼, 예수님은 그러한 ‘눈뜸’과 ‘투신’을 우리에게 명하신다.
‘신앙의 사회적 실천’ 방법 중에 우리는 시민단체에 가입하거나 후원하는 참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동선을 추구하고 연대성 원리에 입각하여 진정성과 순수성을 잃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시민단체를 찾아 힘을 보태는 일은 아름답고 힘 있는 실천 가운데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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