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순교자의 달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연중 특정 시기를 정해 신심행위와 기도를 독려한다. 9월은 이 땅에 가톨릭 신앙의 싹을 틔우고,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켜낸 신앙 선조들의 삶과 영성을 기억하고 본받고 따라 살려는 의지를 다지는 특별한 때이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로 피어난 꽃이다. 순교로써 신앙을 지킨 신앙선조들의 피와 땀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주춧돌이며, 한국교회 발전의 자양분이 됐다.
목숨을 내어놓는 순교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200여 년에 걸친 모진 박해 와중에 수많은 사제 평신도들이 순교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순교자도 1만명을 헤아린다.
머리가 터지고, 가랑이가 찢어지는 혹독한 고문에도 선조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부모, 형제, 내 자식이 고꾸라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선조들은 하느님을 외면하지 않았다. 구전(口傳)과 기록을 통해 전해오는 순교자들의 삶은 감동을 넘어 거룩함 그 자체다.
순교자의 달이 되면 순교영성을 본받고, 순교신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갖가지 신심행사와 프로그램들이 봇물을 이룬다. 그 가운데 ‘성지순례’는 순교자의 달이 아니더라도 신자들이 매년 끊이지 않고 전개하는 대표적인 신심행위다.
이러한 성지순례가 그 본래의 취지와 감동을 잃어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해 9월 본지가 집중 취재 보도한 바 있지만, 관광하듯 둘러보는 성지순례, 생색과 흉내만 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의 성지순례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성지순례는 소풍이나 관광이 아니다. 성지순례는 말 그대로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묵상하며 주님의 길을 더욱 충실히 따르기 위한 기도이다. 성지는 소풍장소나 관광명소가 아니고 거룩한 기도의 장소다. 이러한 순례가 단합대회나 ‘순례를 겸한’ 관광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할 일이다.
순례 여정에 어느 정도의 휴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주(主) 객(客)이 전도되지는 말아야 한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신앙의 참 맛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이를 자주 본다. 성지순례를 경험한 뒤에야 가톨릭 신앙의 깊이에 매료됐다는 예비신자들도 많다. 성지순례는 이처럼 시들해진 신앙에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우리 신앙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다.
적당주의에 물들어가는 성지순례, 편의주의식 순례 행태를 반성하고 성지순례 본연의 의미와 경건함을 되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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