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발전은 간절히 원해야만 얻는 것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가 도래하기 마련-이라는 ‘민주주의 공식’은 이제 상식처럼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그랬고 동유럽이 그랬다. 먹고 살만해지면 교육 받은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자기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1979년 경제 개방 이래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을 보며 이제나 저제나, 그래도 틀림없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민주화를 고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경제 변화가 자유정신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국과 자유롭게 교역하다 보면…시간은 우리 편”이라고도 했었다.
참여정부가 북한과 대규모의 남북 경제 협력사업(사실은 일방적 ‘퍼주기’지만)을 벌이겠다는 것도 북한을 시장경제로 유인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그러면 북한도 민주화를 받아들일 것이고-의 논리에 따라서다. 극심한 빈곤과 부패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아프리카 역시 선진국에서 부지런히 원조를 해주면 빈곤과 부패와 독재의 사슬을 떨치고 번영과 민주로 나아갈 것이라고 세계의 착한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다.
미국의 정치 사회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이 1959년 ‘경제 성장이 민주주의를 부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함께 강조했던 부분은 그러나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제가 민주화로 연결될지의 성공 여부는 바로 그 사회 상황에 달렸다는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제 문호를 연 지 30년이 다 돼가는 중국은 정치 민주화 없이도 얼마든지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베이징 모델’을 자랑하고 있다. 장사와 사기업은 허용하되 정치적 반대를 무자비하게 억압하는 ‘전략적 조정(stategic coordination)’을 통해서다.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탄압이 그 중에서도 핵심이다.
경제 개방이라는 것도 외부에서 달콤한 원조로 유인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마오쩌뚱이 저승으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시장 개방을 단행한 덩샤오핑은 마오쩌뚱이 제 백성 수백만을 굶겨 죽일 때 숙청당해 있었으며 독재자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뜻을 펼 수 있었다.
베트남이 1986년 시장경제로 돌아선 것 역시 공산 독재자 레주언이 그해 6월 죽었기에 가능했다. 혁명 주역이었으나 한동안 숙청당했다 복귀한 응우옌반린은 그해 12월 당총서기가 되면서 도이모이(개혁) 도입을 선언했다.
그래서 나는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아무리 참여정부가 폭포수 같은 경제 지원을 퍼부어도 북한이 결코 민주화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화는 커녕 중국이나 베트남만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일지조차 의문이다. 지금 참여정부가 지원하는 쌀조차 배곯는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형편이다. 오히려 선군(先軍)정책의 군량미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군자금으로 활용되면서 김정일 정권을 공고히 해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가 올려 보내는 쌀과 구호품이 북한 주민들을 배불리고, 우리가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개성공단이 북한 곳곳에 시장경제를 전파하는 확대판 역할을 한다면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누가 봐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폭압적 봉건적 독재체제를 대이어가는 북한 정권이다. 여기다 대고 끝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은 오히려 폭정을 부추기는 반민족 행위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물론 대북 지원이나 남북 경협을 부지런히 해줘야 체제 불안을 떨쳐낸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어림도 없다고 본다. 김정일 정권은 핵을 가진 덕분에 세계가 다투어 ‘조공’을 바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사방에서 ‘핵을 가진 대가’가 쏟아져 들어오는 판에 굳이 시장을 개방하고, 골치 아픈 중산층을 늘려 놓고,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요구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나라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건 외세의 침탈과 탐욕 때문이 아니라 그 나라 지도자들의 잘못 탓이 크다. 나라 경제가 일어나는 것도 못된 지도자가 사라진 뒤 제대로 된 지도자가 제대로 된 정책을 펴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 지도자가 민주화까지 나아가려면 ‘상황’을 뛰어넘는 또 한번의 도약이 필요하다. 성장도 민주도 필연(必然)이 아니었다. 간절히 원해야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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