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 사랑을 지키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충북 단양에 자리한 신앙공동체인 ‘산위의 마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터넷도 없는 이곳에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적어봅니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정부에 이 제도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하나뿐인 생명으로 잘못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 수십년 후, ‘우리 후손에게 어떻게 비춰질까?’하는 물음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공연을 위해 소년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을 담당하는 분들로부터 집안 환경에 대해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외짝부모이거나 버려진 아이들로 성장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가정과는 유리된 채 자란 아이들은 구타와 욕설, 그리고 성을 사고파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매체들에 마음과 몸이 피폐해지기 쉽고 보편적이지 않은 인격체로 사회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다고 합니다. 듣는 내내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보호받고 올바른 교육이 필요한 때에 그들의 마음에 독을 넣은 셈입니다. 미성숙한 산업화를 거치며 천민자본주의적 성격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 안에서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기 쉽고, 원만한 가정생활도 어렵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공포와 상실을 체험한 이들은 종교나 사회에서도 사랑받는 법을 익힐 길이 막막합니다. 이야말로 악순환입니다. 저도 그런 상처가 있었고, 방황도 했었고, 지금은 그를 통해 이웃을 바라보거나 작품 안에 역할을 볼 수 있도록 훈련 중입니다. 방황이 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인도 캘커타의 마더하우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마더 테레사와 함께 지내셨던 수녀님을 통해서,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잠언들 중에는 이 시대의 처참함에 호소하는 말씀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엄마가 아이를 죽이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인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이 악순환의 꼬리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를 잘 일러줍니다. 가정 안에서 미움 대신 화해와 용서를 실천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용서라는 말이 유행처럼 오르내렸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평화, 화해…. 개인의 안정이 절실한 시대여서 그럴까요. 그런 시대를 비추듯이 올해는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 살인범과 희생자, 그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용서’라는 태산 같은 주제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주곤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위해서 선처를 구하는 사랑이야기에서부터 카드빚 때문에 가족을 몰살한 아들까지, 생각만 해도 충격적인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피해자나 가해자의 입장에 서보지 못하면 감히 할 수 없는 얘기라 송구스런 마음이 크지만, 합법적 살인은 이미 인간을 위한 법이 아닙니다. 법은 사람을 서로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내버려 두신 하느님께서도 대답은 없으셨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낯선 곳에서 연애편지를 받습니다. 천주교의 교정사목 후원 소식지를 통해 특별한 사람들의 가장 아름다운 고백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형수들의 편지였습니다. 그들 눈에 비친 생의 순간순간은 무미건조하게 생활하던 저에게 각성제와 같았습니다.
자신이 반사회적 인격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 대한 회한이나 억울함을 넘어서 피해자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남겨진 자신의 가족에 대한 애틋한 고백들은 제가 남겨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합니다. 그리고 달라진 그들마저 세상에서 완전히 내치는 사형제도의 모순이 크게 다가옵니다.
사형제도가 하루빨리 폐지되어서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가 올 수 있도록 작은 곳에서부터 사랑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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