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대추씨만한 꿈이 있다. 첫째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것이다. 둘째는 내 손으로 내가 살 집을 짓는 것이다. 동네 이장이 되는 것은 그 세 번째 꿈이고 마지막 꿈은 휴대전화 없이 사는 것이다.
4년 전 지인들과 함께 주말마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발자국을 남겼다. 비록 서른 세 구간으로 나누어 걸었지만 첫 번째 꿈은 이룬 셈이다. 내 손으로 내 집 짓기라는 꿈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계치’에 가까운 내 능력에 비춰보면 애초부터 무리한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장기적 삶의 플랜 속에 있으니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시골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동네 이장이 되겠다는 꿈 또한 내 의지로만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아직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네 번째 꿈을 버렸다. ‘휴대전화 없는 삶’을 포기한 것이다. 10여 년간 휴대전화 없이 살았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벨소리가 싫었다.
손전화 없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많은 불편이 따랐다. 동문회 동아리 모임은 물론이요 경조사까지 아예 문자메시지로만 알린다.
얼마 전 친한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문상을 못했다. 모임의 총무가 부고소식을 문자메시지로만 연락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 그 소식을 알고 얼마나 얼굴이 화끈 거렸던지…. “휴대전화 없는 게 자랑이냐?”고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단숨에 달려가 휴대전화를 샀다. 비록 내 삶의 꿈은 깨졌지만 깨진 꿈이 가져올 행복은 내 꿈보다 더 클 것을 믿는다. “이젠 저에게도 전화벨을 울려 주세요.”
연재호 (동아일보 미디어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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