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오는 12월 30일까지 사형 집행이 없을 경우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 들어서게 된다.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란 비록 제도적으로는 사형제도가 형벌의 하나로 완전히 폐지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10년 동안 실제로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로 분류된다는 의미의 명칭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는 총 131개국이 법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으며 불과 25개국만이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 사형제도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이 명칭은 앞으로 사형제도를 법적, 제도적으로 완전히 폐지하는 길로 나아감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는 의미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해 20여개 국내 종교 시민 사회단체들은 이 역사적인 시점을 앞두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적극 환영하며, 모든 국민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이번 캠페인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불타오르기를 기원한다.
오늘날 세계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온갖 도전이 주어지고 있다. 하나의 인간 생명은 우주와도 맞바꿀 만큼 그 존엄성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에서 생명의 존엄성이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지를 성찰할 때 우리는 생명 문화의 건설을 위한 노력에 더 이상 소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이처럼 우리 사회와 국가, 나아가 지구촌 전체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인간 생명은 잉태로부터 자연사까지 생명의 전 과정에서 그 존엄성을 지켜나가는데 추호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며, 인간 이성의 명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에 도전하는 우리 사회의 온갖 조류에 결연하게 맞서야 한다. 그 첫 걸음이 될 사형제도 폐지의 과업을 위해 가톨릭교회는 다른 모든 종교 단체와 시민 사회 단체들과 함께 뜻을 모을 것이다. 생명의 수호는 하느님의 창조 과업에 참여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은 생명을 보존하고 수호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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