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올해 12월 30일로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국’이 됩니다. 이날이 있기까지는 그야말로 험난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1970년대까지 사형제도 존폐문제는 종교인이나 형사법학자들의 논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형제도가 종교적, 학문적 영역을 벗어나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1972년 무렵부터였습니다. 당시 사형수가 수용되어 있던 곳은 서대문에 있던 서울구치소뿐이었습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재소자의 교화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독지방문위원들이 중심이 돼 사형수에 대한 처우개선 문제를 제기했고, 뒤이어 사형제도 자체의 존폐문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는 군부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기에 사형제도 존폐문제나 사형수에 대한 처우개선을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구치소 담장 안에서 독지방문위원이나 뜻있는 일부 교정직원들이 낮은 목소리로 논의의 불씨를 지피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쩌다 사형수의 입장을 은유적으로 글로 쓴 용감한 지식인은 가차 없이 구속돼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형제도 존폐 문제는 1987년 민주화의 물결에 따라 서울구치소 교화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1989년에 이르러 국제연합(UN) 총회가 사형폐지결의안을 가결했다는 소식에 힘입어 그해 5월 30일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사형제도 폐지 문제를 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종교단체 종교인들과 뜻있는 사회 저명인사 등이 중심이 되어 자생적으로 조직된 사폐협은 사형제도 폐지를 그 종국적 목표로 삼고 사형제도 위헌 제청, 사형폐지 특별법 제정 청원, 공개강좌와 세미나 개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국제대회 개최와 해외 관련 단체와의 교류 및 연대, 사형수와 피해자간의 화해 주선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사형제도 폐지의 당위성을 알리고 실천을 촉구하는 선에 머물던 사형폐지운동은 2001년 1월 19일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 7대 종단의 종교인들이 참여하는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이 결성되면서 더욱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운동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형폐지 범종교연합과 사폐협, 그리고 인권단체들의 하나된 노력으로 ‘사법 살인’에 대한 국민적 자성이 이뤄지게 되었고, 국민의 정부·참여 정부가 사형수에 대한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그에 더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도 폐지를 정부에 권고하는 결정을 한 것 등이 보탬이 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사형 집행이 10년간 없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국제적 공인을 받게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사형제도를 철옹성처럼 고수하고 있던 동북아시아의 한 모퉁이가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위대한 힘과 결단에 의해 무너져 내리게 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인권 선진국의 기틀을 새롭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10년 전 하루아침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권력의 만행이 두 번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 모두 경건한 자세로 모든 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날을 함께 맞이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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