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게이트’. 소설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박사학위 위조로 시작된 사건은 이제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학위위조 사건을 접하면서 어느 박사님이 떠오릅니다.
10년 전. 전쟁터같은 서울이 싫어 솔가해 시골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농사꾼인 그를 만났지요. 농사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습니다. 그와 똑같이 참깨를 심어도 우리 밭에선 싹이 트지 않는데 그의 밭에선 새싹이 무럭무럭 잘도 큽니다. 기상청에선 ‘내일 맑음’.
그러나 그는 서쪽 하늘을 힐끈 보곤 “내일은 비”라고 일갈합니다. 아뿔사. 그의 말이 맞습니다. 50년 된 그의 오감은 농업교과서이자 기상청입니다. 친화력은 또 어떻고요.
읍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장날이라도 돌아오면 다섯 발짝도 못가 아는 사람과 악수를 합니다. 동네 일은 혼자 도맡아하는 마당쇠. 권투 장갑만한 손은 인간 포크레인이죠. 농한기땐 공사판서 품을 팔아 쌈짓돈을 법니다. 이 죽일 놈의 생활력. 그래서 아주머니들에겐 ‘인기짱’이죠.
그런 ‘강한 남자’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었습니다. 얼콰하게 취기가 오르면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산수는 80점을 넘었어”라며 호기 아니 호기를 부립니다. 그렇습니다. 아킬레스건은 ‘가방끈’.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박사학위를 땄지요. 주민들이 학위수여를 했지요. 이제 “한박사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즘 박사님의 심기가 좋지 않습니다. 학력위조 파문 때문인 듯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한박사님, 힘내세요. 형님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들의 박사입니다.”
연제호(동아일보 미디어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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