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작은 생활 상담이었는데, 한 여성이 자기 애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지혜로운 처신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남자친구가 일 욕심이 너무 커 자기한테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는 불평이다. 그 대답이 엉뚱한 듯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상담자 왈, 남자는 지배의 본능이 큰지라 애정 행각에 앞서 일에 대한 집착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성공은 다른 이를 발밑에 두려는 지배 본능의 발휘이며,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다른 욕구들은 유보된다는 주장이다.
본능도 여러 가지이고, 이성간의 애정 역시 원초적인 본능의 하나이기에 ‘짝짓기’(?)에 앞서 지배 본능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어패가 있다. 허나 역사를 살펴보면 남성의 본능-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본능-을 말할 때 권력과 지배를 향한 맹목을 우선 꼽는 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나침은 항상 부족함만 못하듯이 지배욕, 그리고 지배욕과 동전의 앞뒷면 같은 명예, 권력 욕구가 통제되지 않을 때, 사태는 심각해진다. 특히 그것이 타인의 삶과 복지에 관련된 것일 때 더욱 그러하다.
불순한 명예와 권력의 폐해에 대해 성경도 엄중하게 경고한다. “자,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며 바벨탑을 세우는 이들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들의 명예와 권세를 떨치려 한다. 이 방자한 이들을 보면서 하느님은 염려하신다. “이것은 이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항상 인간의 주체 못할 본능에 거스를 것을 권고하신다. 예수님의 역설은 항상 삶의 진리를 가장 역동적으로 드러내신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권고는 버림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얻는 역설의 진리를 선포한다.
또한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한다”는 말씀은 생명을 던짐으로써 영생을 얻는 구원의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제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정복해서 지배하고, 권력을 장악해 명예와 부를 쟁취하는 대신 끝없는 봉사와 헌신으로써 오히려 우리는 지고의 권좌에 오를 수 있다.
과연 인간의 참 본능은 무엇인가? 이기심이 인간의 심성인 듯하지만, 오히려 타인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 정신을 더 고양해줌을 우리는 종종 체험한다. 내 작은 나눔으로 기뻐하는 이웃을 볼 때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왜 인간에게는 이기적이고 저열한 본능만이 있는가’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착한 이웃들이 지닌, 기꺼이 사랑하고 봉사하며 희생하려는 마음과 자세 역시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우리 안에 내재한 양면의 본능들, 그것들을 사랑으로 다스림으로써 선의의 본능을 양육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일인 듯하다.
지배와 권력욕으로 권모술수를 불사하는 유력한 정치가들보다, 작지만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는 소소한 이웃들이 내게는 더 소중하다. 대선에 나서는 후보자들 중에서 이들 누추한 이웃들을 조금이라도 닮은 후보가 꼭 있기를 바란다. 그릇된 후보가 선출되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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