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생활 29년이 다 되어간다.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지도 열여덟 해가 되어간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보람되며 그만큼 힘든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어느 개신교 신학교에서 성경을 강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수강자 30여 명 가운데 여러 명이 전도사였다. 세 시간씩 6주간을 강의했다. 1학점짜리 강의다. 틈틈이 그곳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고 점차 어느 정도 속마음까지 주고받게 되었다. 그런데 ‘ㄱ’ 목사님은 불과 300여 명 되는 작은 교회에서 10명을 필리핀으로 유학 보냈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그는 자기 아이들도 유학을 보냈다. 유학 간 아테네오 대학은 세계 100대 우수대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목사님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기쁘고 자유롭게 공부하는 아이들이 보기에 매우 좋단다. 만날 때마다 자랑이다. 더욱 흥미로운 일은 한 울타리 안에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대학교까지 있는데 그 책임자들이 모두 가톨릭 신부란다. 우리는 필리핀을 경제수준으로 보아 평가절하하기 일쑤다. 그러나 적어도 그 곳에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우수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학생들이 곳곳에서 모여든다.
선발 기준이 퍽 까다로워 쉽사리 들어갈 수도 없거니와 끝까지 버텨내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목사님의 중학생 아들이 그곳에 가자마자 자신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여 영어를 비롯한 공부에 재미를 톡톡히 보는 모양이다. 대부분 크게 만족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계 학교를 가톨릭 사제에게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자랑을 한다. 모든 경비를 들여 꼭 한번 보여주고 싶으니 시간만 내란다. 젊었을 때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칠 정도로 서방교육에 익숙해있는 그 분의 평가다.
이야기 끝은 어두웠다. 우리나라 교육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작년까지 대학에서 교무처장으로 일했던 필자로서 그 목사님 의견에 그대로 동의한다. 늘 언론에 보도되며 논쟁을 불러일으키듯이 교육부가 지나치게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문제다. 대학발전에 도움도 제대로 못주면서 그냥 앞뒤 양옆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는 느낌이다. 몇몇 학교에서 일어나는 비리나 문제를 마치 모든 학교에서 언제나 그런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문제다.
다른 장관의 경우도 그렇지만 교육부 장관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자주 바뀌는 만큼 무능력자들이 일을 맡았다는 얘기다. 또 한 가지, 능력 없으면 가만히 있다 물러나야 하는데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하듯이, 그 자리에 오르는 사람마다 이것저것 제도를 바꾸니 혼선만 빚어지고 이랬다저랬다 어디에다 마음을 두어야 할지 도무지 정신이 없다. 그 희생물은 죄 없는 피교육자 - 구김 없이 자라며 공부해야 할 어린 꿈나무들이 아닌가!
특히 우리 교육계의 문제는 사회전반 문제와 얽히고 설켜있다. 제 아무리 빛 좋은 교육이라도 거짓 위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 대표적 예로 고위공직자비리에 연루되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있다가 물러나 재판 중에 있는 ‘ㅂ’씨와 가짜학위 문제로 같은 처지에 있는 ‘ㅅ’씨를 들 수 있겠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다가 증거가 나오면 그만큼만 인정하는 ‘위선자들’이 문제다. 세상 심판대는 피해갈 수 있어도 저승 심판대는 결코 그렇지 못하리라는 교훈을 일깨워주고 싶다. 그런 지도자를 두고 일찍이 기원전 8세기에 예언자 아모스가 꾸짖었다. “불행하여라, 으뜸가는 나라의 귀족들 … 너희는 공정을 독으로, 정의의 열매를 쓴흰쑥으로 만들어 버렸다.”(아모 6, 1 12)
필리핀 아테네오 중학교에서 지난 9월에 있었던 사건이다. 양호실에서 중학생 둘이 만난 일이 문제가 됐다. 한국에서 온 중학생 둘이 서로 짜고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 비슷한 시간에 양호실로 오기로 약속했는데 그것이 들통 나서 둘 다 퇴학처분을 받게 됐다고 한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시기에, 한국 아이들이 담을 넘어 다니다 발각됐다. 그 결과 한국 학생은 받지 않기로 학교에서 잠정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건이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약속과 규정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값진 교육의 단면이다. 아울러 그 바탕에는 하느님을 닮아 창조된 인간내면의 소리, 하느님 목소리인 양심을 최우선으로 놓고 가르치는 그리스도 정신이 깔려있다. 우리는 양심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되짚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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