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를 믿는 것이 나라에 해가 되오리까? 가정에 해가 되오리까? 그 일을 보고 그 행함을 살피면 가히 그 사람의 어떠함과 그 도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일찍이 반역을 꾀하였습니까? 간음하였습니까, 살인을 하였습니까?”
조선 헌종 5년. 그는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올립니다. 천주교 박해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그리곤 곤장서 줄톱질형까지 온갖 고초를 겪습니다. 결국 망나니 손에 들린 시퍼런 칼에 목이 잘립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 눈물이 납니다. 그의 글은 ‘먹물’들의 글과는 다릅니다. 살이 없습니다. 뼈만 있습니다. 조선 500년 최고의 문장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무엇이 그의 글을 위대하게 만들었을까? 그렇습니다. 진정함과 신념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과도 바꾼 신념에서 나온 진정함. 죽음을 내놓고 쓴 글. 화려한 문장은 차지할 틈이 없습니다. 목숨으로 피운 동백꽃입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본의 질주 시대.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세상. 신념을 갖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불어 함께’라는 말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박제 언어인지도 모릅니다. 아, 그처럼 살 수 없을까? 주눅이 듭니다. 쥐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직장생활 18년. 신념은 봉급과 바꿔 먹은 지 오래 된 것 같습니다. 간도 쓸개도 다 내주어 이젠 줄 장기마저 없는 듯 합니다. 뚝뚝뚝. 사내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이 가을. 불혹을 훌쩍 지난 가슴에 다시 불을 붙여 봅니다. 초심의 불은 피어 오를까요? 문득 신념으로 시대로 가른 정하상 성인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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